매일신문

급성장하는 대리운전업

연말연시로 모임이 잦아지면서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급증했다. 음주운전을 피할 수 있고 불의의 사고도 예방할 수 있기때문. 이에 힘입어 대구의 대리운전 산업도 본격화 2년여만에 하루 이용객 1만3천여명, 시장규모 하루 2억여원 연간 700억원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분주한 발걸음들 = 지난 10일 오후 7시30분쯤 대구 두류동 ㅋ대리운전 사무실. 3, 40대 남녀 대리운전 기사 20여명이 게시판에 적힌 근무 구역을 확인한 뒤 소형승합차 8대에 나눠 탔다. 흩어져 대기할 성서.칠곡.지산.상인 등 8개 지점으로 출동하는 것. 이들은 그 지점들에서 사무실 콜센터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린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콜이 이어진다. "1호차 1번 평리동 황제예식장 인근 ㅇㅇ횟집으로". "상황실, 잘 들었다! 5분내로 도착 예정". 소형승합차 기사는 대리운전 기사들을 호출된 장소로 태워 가면서 무전기.휴대폰.유성펜을 번갈아 사용했다. 저러다가 운전대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싶어 함께 탄 취재팀의 가슴이 졸여질 정도.

승합차 기사 최씨(35.두류동)는 "밤10시~새벽2시 사이 황금 시간대에는 숨도 제대로 돌릴 사이가 없다"고 했다. 경쟁업체보다 빨리 도착해야 하고 고객들도 호출하기 무섭게 재촉 전화를 연신 해 대기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심야에는 '하얀 승합차'들이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달린다고 했다.

교통신호와 규정 속도를 제대로 지킨다면 30분은 걸려야 갈 수 있는 방촌시장~성서 사이를 13분이면 주파한다는 것. 기사들은 하루 평균 5콜 정도를 감당해 내면 7만~8만원 정도의 요금을 받아 수지를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대리운전 활동시간은 통상 오후 7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3시 30분정도까지다. 쉴 새 없이 고객들을 찾아 밤거리를 질주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녘이 밝아오고 대리운전기사들은 사무실로 모이거나 현장에서 바로 퇴근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친다.

◇누가 종사하나

대리운전업체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처음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비싼 요금체계와 운전기사들이 고급차만 선호한다는 소문 등으로 대중화되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업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가격인하경쟁이 붙으면서 현재는 대리운전이널리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대리운전기사 직종에 여성기사가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여성취객들이 늘면서 여성운전자 선호와도 맞물리고 주부.여성 회사원 등이 부업으로 많이 나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력2년 이효숙(44.여.칠곡)씨는 "아직까지도 실직자.가계빚 등으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이 종사자의 반이 넘는다"며 "최근 들어 사회생활 차원에서 일하는 젊은 층도 더러 있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이 음주운전을 3번이나 해 구치소 생활까지 한 게 너무 싫어서 대리운전을 하면서 음주운전금지 설교를 하기 위해 일선에 나선 경우. 남편사업실패 후 가세가 너무 어려워 아내가 자녀 학비를 대기 위해 나선 이도 있다. 허정애(48.범어4동)씨는 "자녀들 학비마련이 너무 어려워 힘들고 고되지만 이 일을 택하게 됐다"며 "이제는 자녀들도 대학에 진학시키고 생활도 안정됐지만 계속 일을 하고 싶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대리운전업체는 월급제가 20% 정도, 수당제가 80% 정도로 분포한다. 월급제 경우 80만원~90만원선, 수당제는 일당또는 당일 회사수입을 기사수대로 나눠 지급하기도 한다. 대부분 기사들은 고객이 건네주는 팁과 거스름돈을 가지고 부족한 급여부분을 메꾼다고 했다.

택시기사를 하다 얼마전 대리운전을 하게 된 정상덕(32.두류동)씨는 "100만원도 채 안 되는 급여로 생활하기엔벅차다"며 "남자들에겐 직업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고 주부 등이 부업으로 일하면 괜찮은 일이 이 업종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경력2년의 이은주(41.여.화원)씨는 "지난해 이맘때에 비하면 매출이 반으로 확 줄었다"며 "장사가 잘 될 땐 하루에8콜~9콜, 안 될 땐 2콜~3콜밖에 안 될 때도 많다"고 했다. 기사들에 따르면 올해는 월드컵, 태풍 피해, 대선 등이 영업에 지장을주는 악재로 꼽는다는 것.

◇대리운전업체 역사 및 현황

현재 대리운전업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하나도 없다. 업체수마저 파악할 수 있는 기관도 없어 업체 종사자들에게전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구에 대리운전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8년부터라고 했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한 기사는 "4~5개 업체로 출발, 대부분 10명 미만의 소규모 형태였으나 기본요금이 2만원여서 큰 인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후 2000년부터 고객이 늘고 업체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대리운전업 시대가 열렸다.

요금은 정해진게 없다. 보통 기본구간 4km에 1만 2천원부터 시작하지만 업체마다 요금체계가 달라 고객들이 혼동을 겪을 때가 많다. 한편 업계 관계자들은 서울지역 기본요금 2만 5천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수지를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지역 대리운전업체는 200여개 정도로 이 가운데 사업자등록을 한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운전기사를 25명 이상 확보하고 있는 대형업체는 10개가 채 못되고 나머지는 10명 미만의 소규모 영세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종사자는 운전기사 2천여명, 기사운송차량 기사 400여명 등 총 3천여명 정도며 남녀 비율은 8대 2정도이다. 대리운전 이용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하루 평균 1만 3천명 이상이 사용, 금액은 2억원 내외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역 시장규모가 700억~800억 정도로 이미 포화상태가 돼 더 이상의 시장확대는 무리일 것이라고 전했다.

◇제살깎는 과당경쟁

대리운전업체들의 주요 고객은 술집.식당 손님들. 한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업소에 무더기로 소형광고지를 살포하는 것. 일부 업체는 대리운전기사까지 동원, 업소에 눈도장을 찍기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했다.

업체들은 고객들을 모아주는 업소에 대해 업계에서 '콜비'라 부르는 리베이트도 제공하고 있다. '콜비'란 전화비조로자기 업체를 불러준 업소에 대해 2천원~5천원 정도를 쥐어 주는 것을 말한다. ㅋ업체 배재덕(35) 대표는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광고지를 더 많이 돌리는 것이 경쟁의 전부였는데 올들어 '콜비'가

자연스레 퍼지고 있다"며 "고객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업체들이 '콜비'를 자꾸 올리고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배씨에 따르면 '콜비'를 자꾸 올리다보면 피해를 보게 되는 건 고객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업체들이 '콜비'를 손해보는 것을 고객들에게 웃돈 등으로 충당하게 된다는 것. 일부업체는 10번 이용하면 11번째 무료승차, 080수신자 부담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보험가입업체 거의 없다

하지만 외형에 비해 내실은 빈약한 상태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너무 손쉬운 설립기준으로 인해 업체가 난립하고 있으며 이마저 거부하고 무허가 영업을 하는 곳이 많다. 세무서에 주민등록등본, 임대차 계약서만 제출하면 누구라도 사업자 등록을 내고 영업이 가능하다는 것.

업체 현황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고 감독.관리기관도 전무한 상태다. 이에 따라 대리운전기사 중 일부는 무면허.면허정지.무경력 등 불량상태로도 운전이 가능하다. 또 무보험 대리운전 업체가 상당수여서 교통사고시 피해보상을 제대로 받는 고객도 드물다는 것.

지난 6일 김원한(29.경산)씨는 대리운전을 이용했다 큰 낭패를 봤다. 회식자리가 파한 후 칠곡에서 모업체를 이용했는데동변교 네거리에서 대리운전기사가 앞차와 접촉사고를 낸 것. 김씨는 보험처리를 업체에서 다 해 준다는 말만 믿고 가만히 있다가 보험회사 직원으로부터 차량수리비.병원치료비 약간만을 보상받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 알아보니 차량수리기간 10일 동안의 렌트카 비용 30만원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김씨는 "대리운전자 보험을 들었다 해서 안심하고 이용했는데 차까지 부서지고 내 돈까지 쓰게 된 것이 너무 분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씨는 보험가입 업체를 이용했기에 다행인 경우였다. 업체 관계자들은 200여개 업체 중 대리운전자보험에 가입한 업체는 40여개도 안된다고 했다. 운전기사 1명당 연 34만원~50만원에 이르는 보험료를 내기엔 소규모 영세업체들에겐 큰 부담이 되기에 가입률이 낮은 것.

일부 업체는 가격이 싼 보험상품을 선택, 일부 기사들만 가입시켜 사고발생시 일명 '바꿔치기' 수법도 쓴다고 했다. 보험금액에 부담을 느끼는 업체들이 주로 쓰는 방법으로 무보험 대리운전자가 사고를 냈을 경우 차주에엔 보험가입 운전기사라고 속인 후 보험처리시 실제 보험가입 운전기사가 대리운전한 것처럼 꾸미는 것.

업체 승합차 측면 등에 'ㅇㅇ보험가입'을 기재한 것 중 무보험 업체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객들은 대리운전자보험에 가입됐다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동부화재 서대구지점 현철훈 보상팀장은 "대리운전자보험은 대리운전자에게 발생할 각종 사고를 대비해 만든 상품이기 때문에 사고에 따른 고객의 보상 문제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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