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년美談 '남이의 새해 희망'

남이(8)에겐 2003년이 두번 태어나는 해이다. 오는 3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라고 꿈에 부풀었다. 빨간 구두에 꽃무늬 원피스를 인형처럼 차려 입고 나설 3월은 그렇게도 그리던 봄날이다.

남이는 뇌성마비 장애아. 게다가 버려진 아이. 두 다리가 꽈배기처럼 꼬였다. 서는 것은 커녕 양반다리 하고 앉는 것도 꿈꿀 수 없었다. 남이가 사는 집은 대구 만촌동 '룸비니동산'이다. 다른 일곱 명의 더 심한 아이들이 형제자매들. 이 가정은 국가의 지원을 마다하고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후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이런 남이에게 인연은 "햇볕처럼" 그렇게 다가섰다.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장성호(39) 교수. 남이와 그 형제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장 교수는 지난해 봄 남이의 집을 찾아갔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재활시킬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 살펴봐야겠다는 것. 여덟명 아이들을 일일이 살펴 본 장 교수는 남이를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곳곳에서 진단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날부터 남이의 '걸음마'가 시작됐다. 장 교수는 먼저 다리 경직을 풀어 줄 약물 치료를 시도했다. 꼬였던 다리가 부드러워졌다. 거들어 주면 앉을 수도 있게 됐다. "특수의자에 앉혀 생활케 해야 상태가 좋아진다"며 장 교수는 전문가를 보내 고가의 장비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단계 더 들어간 치료를 시도해야겠다며 같은 병원 소아재활 전문의 이지인 교수에게 부탁했다. 새로운 치료는 주말마다 정성껏 진행됐다. 상태가 더 호전됐다. 그러나 걷는 데까지 이르기에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아예 수술을 해 보면 어떨까? 장 교수는 또한번 욕심을 더 부렸다. 이번에는 사정을 얘기 들은 신경외과 김성호 교수가 특진비를 받지 않고 집도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것이 지난 12월16일. 수술대에 누운 남이도 잘 참았다. 동맥을 찌르는 주사에도 아프단 말 한마디 없었다. 치마를 입고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어린 남이로 하여금 수술 공포까지 잊게 한 것이었다.

일차 수술 성공. 남이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병실로 달려갔다. 한 공무원은 장난감을 사 들고 갔고,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현금을 챙겨간 아저씨도 있었다. 고등학생 봉사자들은 남이를 얼러 주겠다고 찾아 들었다. 23일엔 두 번째 수술도 성공리에 끝났다. 드디어 꼬였던 다리가 완전히 풀어진 것은 물론, 뻐덩뻐덩했던 다리를 구부릴 수 있게까지 됐다. 물리치료와 걷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장 교수 자신은 남이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을 잘랐다. 기자의 사진 취재도 며칠을 거부했다. 하지만 남이에게 그는 그냥 '좋은 의사'이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장 교수는 치료가 자신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끈'을 놓지 않았고, 의사 체면을 뒤로하고 원무 관계자들에게 어쨌든 도움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대가를 바라기는 커녕 오히려 뒷바라지에 보태라며 보호자에게 두 번씩이나 자신의 월급을 털어줬다.

"장 선생님은 진정한 사랑을 품고 사시는 분입니다. 사소한 일까지 걱정해 챙기십니다. 성탄절에는 남이에게 예쁜 인형을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 장 선생님은 의사이기 이전에 사랑의 실천자입니다. 2003년은 남이가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그 자신도 헌신적인 봉사자로 룸비니동산 여덟 아이를 키우는 김금옥(50)씨는 '사랑'이란 단어를 거듭거듭 얘기했다. 남이는 며칠 후 퇴원할 예정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