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논공읍 김은혜(34.여.가명)씨는 사지가 갈수록 마비돼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루게릭병(다발성 근육 경화증) 말기 환자이다.
8년 전 이 병에 걸려 결혼 2년만에 이혼당하고 돌도 안된 아들과도 생이별해야 했다.
병은 갈수록 악화돼 지금 김씨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팔뿐. 두 눈도 완전히 멀었고 혀까지 굳어 대화조차 불가능하다.
◇마음을 낫게하는 치료=이런 김씨를 '대구호스피스' 회원 5명이 지난달 28일 오후에 찾았다.
일주일에 두번 하루 4시간씩 머리를 감겨주고 노래도 부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먼저 4명의 여성 회원들이 1시간 20분에 걸쳐 김씨의 머리를 감기고 몸 구석구석을 물수건으로 닦아줬다.
류창순(43) 서원경(43)씨는 저려오는 어깨를 연신 추스르면서도 오랜 시간 머리를 받쳐들었고, 박영미(42)씨가 비누칠 하는 사이 안정애(54)씨는 부지런히 물을 날랐다.
간호사 출신인 박씨는 13년 전 부터 활동해 온 호스피스 봉사자. 더욱이 3년 전 독일 요한에서 선진 호스피스를 체험한 뒤 2000년 계명대 호스피스 전문 과정을 수료하는 등 전문성을 스스로 더 다듬었다.
"김은혜씨의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함께 하며 남은 생을 보다 수월케 보내도록 도와주는 게 호스피스 봉사자의 일입니다".
박씨는 병동에 수용돼 많은 입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환자들이 안타까워 무료 가정 방문형 호스피스 단체를 결성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호스피스의 참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그의 인생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전문성 뒷받침=여성 봉사자들의 머리 감기기가 끝나자 청일점 최호석(44)씨의 활약이 시작됐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하루 종일 고심했다는 최씨는 자신만의 매운탕 잘 끓이기 비법을 30분간이나 전수했다.
재미있는 얘기만은 아닌 듯 했으나 이를 듣는 김씨의 얼굴에선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최씨는 소아마비 장애인. 젊은 날을 실의와 좌절로 보낸 뒤 뒤늦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 대학원에 입학, 2년 전 사회복지사 자격을 땄다고 했다.
"복지사가 된 후 김은혜씨에게 첫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위안과 평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찹니다.
김씨와 동료 봉사자들을 만나는 일때문에 일주일이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작년 11월 창단해 올해 활동을 본격화 한 '대구호스피스'는 지역 최초의 가정방문형 호스피스 단체이다.
의사.간호사.성직자와 2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뜻을 모았다.
일반 봉사자들은 4~5명씩 팀을 이뤄 환자 7명을 나눠 방문하고 있다.
대구호스피스가 여느 봉사팀과 다른 점은 전문 의료인.종교인이 동참해 전문성을 지원받고 있는 점. 결성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한 유방암 전문의 임재양 회원은 의사신문을 통해 동료 의사들의 동참을 호소, 정신과의사.한의사.치과의사 등 8명의 각 분야 전문의를 맞아 들이기도 했다.
임 박사는 "호스피스 활동엔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줄 전문 의료인이 꼭 참가해야 하고, 의료인들이 누구보다 먼저 현장을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시민 나서야=죽음 앞에서 정신적 공황까지 겪고 있는 말기 암환자들에겐 정신 상담도 필수. 대구호스피스 이사장 윤종섭 목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은 알게 모르게 죽음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윤 목사는 "오래 전부터 호스피스 활동을 해 온 불교.가톨릭 인사들도 동참해 자원봉사들에게 환자들과의 의사 소통 방법을 가르치거나 신자인 환자들과 24시간 상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윤 목사는 "도와달라는 사람이 많지만 후원금이 달려 힘든다"며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말기 암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달에 3천원 회비를 내는 후원자가 아직은 100명도 채 못돼 사무실이나 차량은 마련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는 것이다.
053)752-0091. dghospice.or.kr.
국내에서는 1965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강릉 갈바리의원(병상 14개)에서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함으로써 체계적 호스피스가 모습을 드러낸 후 지금은 병동형.시설형.주간형 등 유료 중심의 50여 기관이 활동 중이다.
무료 호스피스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헌혈 처럼 봉사한 만큼 쿠폰을 줘 나중에 자신도 봉사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장치도 필요한 것으로 제안되고 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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