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이곳에서 열일곱 번째의 겨울을 맞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십칠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다른 곳에 비해 도로가 포장이 되었다는 것 외엔 별다른 변화 없이 정지된 듯한 풍경이다.
며칠 전에 내렸던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길을 오가는 차들의 움직임에 어딘가 겁먹은 표정이 서려 있다.
빙판길 운전에 익숙해진 덤프트럭들이 무법자처럼 신작로를 질주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보면 한겨울의 심술쟁이처럼 논둑에 처박힌 차들을 보게 된다.
이런 날이 일주일 혹은 한 달 이상 계속되어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게 여겨지는 건 순전하게 설원의 흰빛 때문일까? 땅의 밑바닥은 차갑고 눈가루들이 차들이 지날 때마다 하얗게 솟아오른다.
이따금 산을 넘어 오는 바람소리가 전설처럼 창에 부대껴 사라지고 나무둥치 아래엔 밤새 얼어 죽은 까치가 한 마리 뒹굴고 있다.
막막하게 바라보이는 눈 속에 모든 것들은 동결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한참동안 바라보노라면 결코 정지된 것이 아닌 그저 잠을 자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굴속에 몸을 처박고 웅크려 잠들고 있는 산속의 동물들만 아니라 사람 또한 가급적 힘의 소모를 줄이고 이른 저녁부터 잠을 청한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땅으로 잦아들어 동면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소리나 너구리, 뱀이나 두꺼비 같은 파충류처럼 나무들도 이파리를 떨구고 뿌리 속으로 수액을 내려 잠을 청하고 있다.
잠들지 않은 건 늘 푸른 소나무나 잣나무 같은 침엽수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다.
이 겨울동안의 휴식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본연의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었나 싶을 때가 있다.
피를 말리는 생존경쟁도 없고 좀더 낳은 삶을 추구하는 출세지향적 사고방식도 존재하지 않는, 늙은 사람들의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은 죽어 자기들이 묻힐 땅을 알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잣대란 게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동면하는 겨울 동안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었던 지혜이고 아름다운 설원의 풍경이 가르쳐준 언어가 아닐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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