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최근 10년전 떠나온 영덕으로 근무처를 다시 옮겨가면서 "지방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이니 영덕 역시도 당시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했었다.
그러나 며칠에 걸쳐 살펴본 지역경제는 조금 못한 것이 아니라 황폐화 그 자체였다.
10년전 영덕을 떠받쳤던 수산물 가공업체는 대부분 부도난 상태였고, 문을 열고 있는 업체도 겨우 숨만 살아 헐떡이고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변변한 직장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웠고, 달산.창수 등 오지면(面)의 젊은이들 경우 '기념물'이 될 정도로 귀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품의 어느 마을에서 상여꾼이 모자라 칠순이 넘은 할아버지가 상여를 메는 모습이란…. "농촌으로 시집 올 처녀가 없는데 누가 살려구 하겠수?" 40이 넘도록 아직 결혼을 못한 창수면의 한 청년 농민은 자기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장가 갈 생각은 접었다면서 애써 담담해했다.
10년전보다 회색 콘크리트로 덧칠한 겉은 분명 그때보다 화려하건만 한 꺼풀 벗긴 속살은 피멍이 들대로 든 모습이었다.
"뭘 할게 있어야지". 1년 전 식당을 개업한 한 청년은 할 것이라고는 식당.다방.선술집 등 먹고 마시는 것 뿐이다보니 우후죽순격으로 오픈, '제살 제 뜯어먹기 영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민간에서 돈을 창출할 계층이 없다보니 지역경제는 공무원에 절대 의존하는 구조로 탈바꿈했고, 특히 다방, 소줏집, 식당 등은 공무원들에 의해 거의 좌지우지됐다.
그들에게 비상이라도 걸리는 날이면 파리 날린다고 업주들은 하소연했다.
읍내 식당 경우 장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군청 등 각 기관에서 몇십명이라도 모아 이러저런 행사를 하는 날이 장날이었다.
이번주 초 열린 영덕군의회 임시회에서 모 의원이 보여준 질문은 지역 경제의 단면을 그대로 비춰줬다.
"집행부가 지역경제활성화 차원에서 바가지 요금을 단속하겠다고 보고하는데 장사도 안되는 마당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힐난하고, 한발 더 나아가 "그런 생각은 말고 각 기관의 행사를 영덕 읍내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빈사상태에 있는 영해면 등 다른 면으로도 옮겨 개최하라"고 주문한 것.
군청 모 직원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지만 워낙 밑바닥 경제가 어렵다보니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군세의 기준이 되는 인구도 4만8천여명으로, 10년새 약 절반 가까이 줄어 인근한 포항에서 살고있는 영덕출신 6만여명선을 크게 밑돌았다.
찌든 경제력은 소줏잔 정도도 나누게 함을 멈췄고, 밤 9시만 넘으면 영덕읍내 상가를 출입하는 사람도 찾기 어려워 시가지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생활에 찌들고, 집집마다 떠안고 있는 과중한 부채에다 장래가 보장안되는 현실…, 군민들의 눈가엔 애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지는 못할 망정 처절한 그런 모습으로 영덕은 변해 있었다.
현재도 1년새 2천여명씩 줄고 있는 인구, 10년 후 영덕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더 추락할 것조차 없어 보이는 지금이 더 나을 것 같은 생각, 끔찍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는 지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세운다고 연일 야단법석이다.
제발 영덕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펼 수 있는 그런 정책을 내놓았으면 한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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