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중 상당수가 지방 방송을 틀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구 지역 모 방송국에서 10여년째 근무하는 ㄱ씨가 말하는 지방 방송의 현주소다.
서울 집중이 정치.경제에 이어 지방의 문화적 정체성까지 위협하듯 '지방 방송'도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서울보다 뒤쳐지는 열악한 제작 환경과 정보력의 부족, 이에 따른 시청자의 외면까지. 여기에 거대 자본을 앞세운 상업 위성 방송이 등장하면서 지방 방송은 서울 소재 방송의 '전파 중계'라는 최소한의 존립기반 마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서울의 눈높이에만 맞춘 방송 정책과 '지방 방송'의 정체성을 잃게하는 서울의 영향력(편성.소유) 행사는 '지방 방송'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현재 지방 방송국은 MBC의 계열사와 KBS의 직할국, 10개의 지역 민방 등을 합쳐 모두 54개. 외형적으로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규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학자들은 "지금까지 '지방방송'은 생산자의 위치보다는 서울 방송의 중계소 역할을 해왔다"고 냉정한 지적을 내린다.
문제는 지방 방송이 안고 있는 이러한 '위상'이 자체 노력만으로 극복 할 수 없는 '서울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는 점이다. 현재 지역 민방을 제외하고는 방송의 두축인 '편성권'과 '소유권'을 서울이 모두 갖고 있다. 서울 직할 체제로 운영되는 KBS는 서울에서 지역 방송 시간대를 편성하고 제작 비율까지 결정하고 있으며 MBC도 편성과 경영권을 서울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01년 11월 KBS 지역PD들은 서울 위주의 방송 편성에 맞서 반기를 든 적이 있다.
당시 지역PD들은 "지역 프로그램 제작에 투입돼야 할 인력과 예산이 서울 위주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집중돼 정작 지역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네트워크 프로그램이 지역 정보를 지역의 시각으로 전국에 유통시키는 게 아니라 지역 화제를 중앙의 시청자들에게 소개하는 형태로 지역방송의 역할이 바뀌어 버렸다"고 항변했다.
또 지난 12월초에는 대구와 부산 MBC 등이 지방분권운동 본부와 '분권 운동 릴레이' 생방송을 계획했으나 방송 이틀을 앞두고 계열사 사장단의 긴급회의로 방송이 취소된 사태가 빚어졌다. 이를 두고 분권운동본부측은 "분권운동을 석연찮게 바라보는 서울 MBC의 영향력 때문" 이라며 비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 대구 MBC 한 종사자는 "80년 지방 계열사 소유권이 서울(주식 51%)로 넘어간 이후 서울에서 사장이 내려오고 있다"며 "지방 방송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방사 출신의 경영이 필요하지만 서울에서 사장 선임권만은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편성률을 보면 지방방송의 '정체성 위기'가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지역 방송 중 자체 편성률이 가장 높은 곳은 TBC(대구 방송)로 30%를 자체 프로그램으로 내보내고 있다. 대구 MBC와 KBS의 편성률은 15%와 8%대 수준. 그나마 방송위원회의 강제 규정으로 30%를 편성하는 TBC의 경우를 제외하면 편성률만을 놓고 볼때 MBC와 KBS는 '지방 방송국'이란 '이름'을 붙이기가 애매한 수준이다.
물론 지방 방송의 정체성 문제에는 자체적인 노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계명대 신방과 김관규 교수는 "서울 집중 등에 따라 지방방송이 성장의 한계가 있지만 지방 방송들이 지금껏 서울 방송에만 의존 자체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고있다"고 지적했다.
대구방송의 경우 '30%"인 자체 편성의 3/1을 구입해온 외화나 다큐멘터리물로 대체하고 있다. 대구방송 관계자는 "솔직히 부족한 제작인력과 제작비를 갖고 30%를 자체 편성한다는 것은 한계에 가깝다"며 "경영상 외주물도 일단 내용보다는 가격이 싸야한다"고 털어놓고 있다. 나머지 방송들도 자체 프로는 돈 안드는 '시사물'이나 '스포츠 중계'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서울 방송에 입맛을 맞춘 지역민의 눈길을 끌어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연예인이나 주요 정보, 문화의 주도권이 서울에 편중돼 있고 90%에 이르는 광고의 서울 집중 등도 '지방 방송'이 질을 높이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중에 하나다.
'뉴스'를 보면 '지방 방송'이 갖는 현실적인 한계는 그대로 나타난다.
'뉴스'는 지방 방송이 정체성을 나타내고 지역 시청자를 가장 많이 끌어올수 있는 프로그램. 따라서 상대적으로 많은 인력과 제작 장비가 투입된다. 현재 저녁 메인 뉴스 시청률이 가장 높은 곳은 대구 KBS. 그러나 타 방송국에서는 이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타 방송 관계자들은 "서울 뉴스 뒤에 따라 붙는 지역 뉴스의 시청률은 서울 방송에 그대로 비례한다"며 "서울 MBC나 SBS의 시청률이 높아지면 대구MBC나 TBC의 시청률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각 지역 방송의 뉴스 시청률은 서울 뉴스에 비해 정확히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지역 방송 뉴스 시청률은 10%대를 오락가락하는 수준. 지방 방송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셈이다.
지방 방송의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는 '위성방송'이 등장하면서 '생존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1년 출범한 스카이라이프가 서울 소재 방송의 위성 수신을 추진하면서 지방방송 전 종사자들은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대구방송의 박영수 노조위원장은 "지방방송이 자체 경쟁력을 갖지 못한 실정에서 지방에서 서울 소재 방송을 위성으로 바로 본다면 지방방송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며 "서울 위주의 방송 정책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주장했다. 지방사들의 항의로 지난해 12월 26일 KBS 1 TV와 EBS에 한해 위성 송신이 허용되고 타방송송신은 방송위원회 승인 사항으로 '방송법'이 개정되었지만 위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방방송 종사자들은 '위성 방송 사태'를 서울 사람들에 의한 서울 위주의 방송 정책이 낳은 대표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실제 방송 정책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방송위원회의 경우 각계 직능 대표 9명으로 구성되지만 지방 방송 대표는 한명도 없다.
동의대 문종대(신방과)교수는 "지역방송의 고사는 지방방송사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하고 서울 문화의 획일화를 초래함으로써 지방민을 서울 문화의 종속적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결과는 빚는다"고 경고했다.
문 교수는 또 "이는 중앙 집중적인 구조 속에서 지역민의 여론이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더 높이는 것"이라며 "지방방송을 살리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李 대통령 "돈은 마귀, 절대 넘어가지마…난 치열히 관리" 예비공무원들에 조언
尹 강제구인 불발…특검 "수용실 나가기 거부, 내일 오후 재시도"
李 대통령 "韓 독재정권 억압딛고 민주주의 쟁취"…세계정치학회 개막식 연설
정동영 "북한은 우리의 '주적' 아닌 '위협'"
강선우, 임금체불로 두차례 진정…국힘 "자진 사퇴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