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 일주일을 맞았다.
사상 최대의 참극으로 기록될 충격적인 사건인 만큼 관련 보도량이 엄청난 데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적잖고 서로 다른 정보로 혼란도 심하다.
매일신문 취재팀의 독자 취재, 경찰 수사 성과 등을 바탕으로 쟁점과 의문점들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보자.
◇범인은 어디서 몇 호 차에 탔나?=범인 김모(57)씨는 상당수 신문·방송에서 '정신장애 2급 장애인'이라 보도했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그같은 혼란은 대구시의 관련 자료에서 오류가 생긴 것으로 보이며, 그때문에 대구시는 사고 발생 일주일째이던 25일에야 뒤늦게 '중풍(뇌병변) 장애 2급'이라고 정정했다.
김씨가 2001년 4월 중풍으로 두달간 입원한 바 있으며, 그해 11월8일 뇌병변 장애인으로 등록했다는 것. 하지만 이는 등록상의 구분일 뿐 김씨의 정신이 건강했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몸과 정신이 성찮은 것으로 보이는 김씨는 사건이 난 지난 18일 아침 성당못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7천원어치(5ℓ가량)를 사 흰색 플라스틱통에 담았다.
그리고는 성당역 또는 송현역으로 판단되는 곳에서 안심행 1079호 전동차의 운전실 바로 뒤편 객차에 탔다.
◇발화 당시 상황=사고 당일 오전 9시51분쯤 1079호 전동차가 중앙로역 구내에 진입하자 방화범은 갑자기 자신의 오른편에 놓아뒀던 검은색 가방을 열어 흰 플라스틱통을 꺼냈다.
그리고 자신의 왼쪽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3번 정도 '딸깍' 거렸다.
하지만 불이 켜지지는 않았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전융남(64·대구 대명동)씨가 "왜 불을 켜고 그래요!"라고 고함치자 범인은 라이터를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1분쯤 후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정차, 전동차 문을 나서려던 전씨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범인이 플라스틱통 뚜껑을 연 후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으면서 범인의 손과 상의로 옮겨붙었다.
놀란 범인이 플라스틱통을 차 바닥에 팽개치자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다.
승객들은 탈출을 시도했고 전동차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온몸에 불길이 옮겨 붙은 범인도 객차 안에서 두세 번 펄쩍 펄쩍 뛰다가 전동차 중간문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먼저 객차 밖으로 대피해 있던 승객 이영복(49)씨가 불붙은 범인의 체육복 상의를 벗겼다.
승객 전융남씨는 자신의 양복 상의를 벗어 범인의 바지에 붙은 불을 껐다.
잠시 후 연기가 차오르고 단전까지 돼 사방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승객 전씨와 이씨는 김씨를 데리고 어둠 속을 더듬으며 지하 2층까지 올라갔지만 갑자기 김씨가 쓰러지는 바람에 놓쳤다.
전씨와 이씨는 무사히 지하철을 빠져 나왔고 연기에 질식했던 김씨는 소방관에 의해 구조됐다.
◇마의 20분=기관사 최모(33)씨는 불붙은 범인이 뛰쳐 나가는 것을 운전실에서 보고는 곧바로 운전실 소화기를 들고 뛰쳐 나갔다.
불은 1호차와 2호차 사이로 삽시간에 번졌다.
소화기 한 통을 다 쓰고도 불길이 잡히지 않자 기관사는 승객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기관사 최씨는 경찰에서 "소화기를 다 쓰고 난 뒤 소화전에 손을 댔으나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며 "객차 사이 출입문을 열면서 뒤로 뛰어가 맨 뒤칸 객차까지 승객이 대피한 것을 확인한 뒤 탈출했으나 계단을 오르던 중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최씨가 종합사령팀 운전사령실과 휴대전화로 통화한 시점은 불이 난지 20여분 후인 오전 10시15분쯤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불 끄기에 매달리느라 종합사령실과의 통신도 안됐다는 것. 오전 10시15분은 구조대가 구조에 착수한 시간이었다.
◇1080호는 왜 화를 당했나?=1079호 기관사의 경우로 보면 대처하는데 전혀 여유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화재 발생으로부터 1079호 기관사의 통화 사이에 20여분의 간격이 있었던 것.
더욱이 바로 옆 열차에 불이 붙어 있는데도 1080호 기관사 최모(38)씨는 승객 대피보다는 전동차를 출발시켜 현장을 빠져 나가려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도 일단 탈출했다가 운전실로 되돌아 갔을 정도. 그 과정에서 기관사는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고, 특히 자신이 탈출하면서는 운전용 마스터 키를 빼 가버려 나머지 승객들을 갇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전동차 전기공급이 중단돼 있어 출발이 불가능했다.
지하철공사 전기팀 관계자는 "현장확인 결과 화재로 인한 과부하로 전동차 전기가 자동 차단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지하1층 전기도 나갔나?=생존자들은 이들 공간이 암흑천지여서 탈출이 더 어려웠다고 했다.
그때문에 더 많은 사망자가 났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그러나 지하철공사측은 지하2층에서는 일부 전기라인이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동차용 전기와는 배전 선로가 다르다는 것.
"역사 내 전기는 역무원들이 수동으로 차단할 수도 있다"는 진술이 있어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
◇불이 왜 그렇게 빨리 번졌나?=1차적인 원인은 전동차에 인화물질이 많았던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작용한 2차적 요인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밀폐된 곳에서 불이 나면 그곳 산소가 곧바로 소모된 뒤 '백 드래프트'(역류) '플래시 오버'(순간폭발)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산소가 소진돼 있던 상황에 치명적인 산소공급 역할을 맡은 것은 1080호 전동차 진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새 산소가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백 드래프트 현상이 빚어지는 것과 함께 그것이 대형폭발로 연결되는 플래시 오버 현상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종합사령실은 현장 상황 왜 몰랐을까?=지하철공사 운전사령실에서는 3명의 근무자가 CCTV 모니터로 전동차 운행 상황을 점검 중이었다.
그러나 당시 근무자들은 불이 난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곽정환 종합사령팀장은 "오전 9시57분에 모니터가 꺼졌다"고 했으나 홍순대 운전 주사령은 "전동차들의 중앙로역 진입장면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밝히는 것이 이번 사건 수사의 핵심 중 하나이다.
◇어느 전동차 피해자가 많았나?=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구조대원 900여명의 증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80호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은 확실하다.
1079호 경우 전동차 안에는 사체가 없었고 개찰구로 올라가는 계단 통로에서 7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반면 1080호 경우 전동차 안에만도 80구 정도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플랫폼과 계단 통로에서도 28구 정도의 사체가 발견됐다.
◇실종자가 사체보다 왜 더 많나?=여러가지 조사가 진행돼 왔는데도 24일 밤까지도 실종 신고된 사람이 300명 이상이나 된다.
반면 신원 확인을 기다리고 있는 수습 사체는 8구뿐이고 전동차 안에서 150명의 사망이 확인된다 하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사체는 160구를 넘기기 어렵게 돼 있다.
실종자 숫자와 수습 사체 사이에는 140명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실종 신고 혼란때문에 빚어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숫자 차이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사체가 없는 희생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전동차 철구조물을 녹일 정도의 고열인 불이 3시간이나 계속됨으로써 사체가 불 타 재로 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재가 고압 분사된 진화용 물에 씻겨 사라지거나 사고현장 보존 실패로 유실됐을 가능성을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문제로 지금 실종자 가족과 당국 사이에 긴장이 높아져 있다.
◇남은 유해 신원이나마 제대로 밝혀질까?=전동차 안에 있는 유해는 150여구 될 것이라는 관측이 수습 관계자들로부터 전해져 있다.
신원 확인팀은 이들은 유전자 채취조차 쉽잖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너무도 심하게 타버렸기 때문이라는 것. 그럴 경우에 대비해 사고현장 실종이 확실한 사람을 법적 사망으로 인정하는 또다른 대응법이 논의되고 있다.
◇구조 체제는 충분했나?=불이 난 것은 오전 9시54분이었고 첫 구조대가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1분이었다.
그러나 구조작업은 오전 10시15분쯤에야 시작됐고 그나마 열차 선로 층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더욱이 구조대원들은 장비 부족으로 한계를 겪었다.
119 신고전화의 초기 대응에서도 한계가 드러났다.
화급히 구조를 요청하는 전동차 승객들에게 대피 안내를 못한 것이 최대 문제. 그냥 화재 신고로밖에 처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9·11처럼 신고자와 계속 통화하며 대피를 안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11·9 보강만으로 이뤄질 수도 없는 것이어서, 국가·도시의 전반적인 구조체제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시민 안전의식에는 문제 없었나?=1080호 전동차 문이 잠겼다지만 승객들이 비상시 대응요령만 알고 있었어도 인명 피해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었음이 드러났다.
객차에 승객들이 쓸 수 있는 비상 코크가 있지만 이를 이용해 탈출한 경우는 극소수였다.
◇사후 대처는 제대로 됐나?=개구리소년 유해 발견 때 엉터리 대응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도 대구 경찰은 이번에 또한번 실수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불이 났던 중앙로역 현장에 대한 보존 조치를 않아, 하나라도 아쉬운 피해자 유골·유물 등의 추가 확보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는 것. 시민단체가 관련 문제를 진작 제기한데 이어 피해자 가족들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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