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고수습 진통 현장 2곳 르포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에서 수거돼 이곳으로 옮겨진 잔재물 감식 절차가 25일 정오쯤 안심기지창에서 시작됐다.

주차장 한쪽에 모여진 200여개의 포대를 덮고 있던 주황색 비닐천이 걷혔다.

작업 참가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독관 2명, 대구시경·경북도경 감식요원 24명, 실종자가족 대표 18명 등.

분류 작업장 주위 40~50m 길이에는 폴리스라인이 쳐졌고 10여명의 의무경찰들이 이를 지켰다.

일본 NHK 등 국내외에서 몰려든 20여명의 기자는 물론 동부경찰서장 등 20여명의 경찰관 출입조차 통제됐다.

작업은 실종자가족과의 협의 아래 진행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네 부분으로 나눠 감식요원과 실종자 가족 대표들이 함께 작업하고, 유류품들이 발견되면 식별번호를 붙여 보관한 뒤 월배기지창으로 옮겨 신원 파악을 위한 정밀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또 한 감식요원은 "유류품 외의 잔재물 더미도 수사가 끝날 때까지 따로 보관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철저히 분류할 것"이라고 했다.

긴장 속에 첫 포대가 열린 것은 낮 12시20분쯤. 이 포대에는 '1-1'이란 인식번호표가 붙여졌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는 모두 사진으로 남겨졌다.

10여분 후, 포대 속의 시커먼 흙더미에서 파일·장갑·머리띠·스웨터 등이 다량 나왔다.

유류품들에는 각각 식별번호표가 붙여진 뒤 정밀감식을 위해 조심스레 비닐봉투에 넣어졌다.

오후 2시20분쯤 운전면허증이 나오자 긴장이 높아졌다.

면허증 주인은 현재 대구시내 한 병원에서 치료 받고 있는 생존자의 것으로 곧 밝혀졌다.

뒤이어서도 휴대전화·안경·노트·수첩 등이 계속 모여졌다.

드디어 오후 4시40분쯤. 잔재물을 뒤지던 감식반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울렸다.

실종자의 유골로 보이는 뼈 조각이 발견된 것. 긴장에 빠져 있던 실종자 가족들의 작업 손놀림이 갑자기 분주해졌다.

한 시간쯤 뒤에는 오른쪽 손과 손목뼈로 나중에 판정된 유골이 잇따라 발견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경악했고 일부 여성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손목뼈를 발견한 실종자 가족 박태원(43·영천 금호)씨는 "현장 훼손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 사례"라며 "대구시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울분을 토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서치라이트 6개가 현장을 대낮처럼 사방에서 비췄다.

저녁 8시를 넘어가자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고 9시쯤에는 유류품·유골의 목록이 작성되고 비닐 밀봉 작업이 이뤄졌다.

그런 작업이 끝나자 국과수 대전중부분소 서중석 소장은 "머리카락을 포함해 유골로 추정되는 물질은 총 14점"이라고 짤막히 발표했다.

종이상자에 담긴 유류품은 수백점에 이르는 듯했다.

끝까지 현장을 지키던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에는 미심쩍어하고 지친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최두성·전창훈·이창환기자

--- 시민회관 ---

25일 저녁 수습 대책본부가 있는 대구 시민회관에서는 준 소요사태라고 봐도 될 상황이 2시간30여분 동안 지속됐다.

실종자 가족 500여명이 시장 면담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200명 이상의 경찰과 충돌이 빚어졌던 것.

사태는 오후 6시쯤 광장에서 시작됐다.

실종자 가족 500여명은 조해녕 대구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광장으로 모였다.

이들은 대책본부 경찰 병력 철수부터 요구했다.

"가족을 잃은 우리가 왜 폭도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지 시장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김기옥 행정부시장이 나서서 대구시를 믿어 달라고 부탁했다.

"공무원 모두는 한 사람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사태수습을 위해 시를 믿고 따라달라".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10여분 후 "시장을 직접 만나야겠다"며 2층 시장 임시 집무실로 올라갔다.

그러나 2층 복도는 경찰들이 막고 있었다.

가족들의 시장 면담도 지연됐다.

그런 중에 집무실에는 아무도 없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화가 난 가족들은 시장실로 밀고 들어가려 했으며, 경찰과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쯤 지하철 안심 차량기지창 감식에서 사람 손목 및 발목 것으로 보이는 뼛조각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족들이 가장 예민해져 있는 중앙로역 잔재물 수거 및 유해 유실 문제는 곧바로 불이 붙었다.

"책임과 권한을 줬으나 시장은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무고한 시민을 죽인 책임자가 경찰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다.

시장은 믿고 뽑아준 시민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대화에 나서라". 당초 시장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던 방의 유리창이 깨지고 몸싸움은 더 격렬해졌다.

김희수(32·구미)씨는 "대구시가 사고 은폐·축소에만 골몰하니 실종자 가족들이 증거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했다.

사태가 수그러들기 시작한 것은 오후 8시20분쯤. 대책위와 경찰 사이에 협상이 이뤄졌다.

대표자 5명이 시장을 면담하는 조건으로 양측이 모두 철수키로 한 것.

그 당시 시장은 경찰에 둘러싸여 다른 방에 있었다.

실종자 가족 대표는 조 시장과의 면담에서 "시장은 즉각 사퇴하고 실정법에 따라 처벌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사태 수습을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새 대책본부가 꾸려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조 시장은 "사건 수습 과정에서의 잘잘못은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에서 밝혀지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받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냉정하게 실종자 신원 확인 등 절차를 밟을 때"라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밤 9시30분 중앙로역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이날 행동을 마무리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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