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새 봄

입춘.우수도 지나 모레면 개구리가 겨울잠을 깬다는 경칩이다.

절기는 어느덧 봄. 새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영하의 날씨로 봉화와 춘양.울진 등지에선 눈발도 날린 모양이다.

'봄눈과 숙모채찍은 무섭지 않다'는 옛말도 있지만 봄눈이야 제아무리 내려봤자 곧 녹을테니 하나도 겁 안난다는 말이겠다.

긴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은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우리의 감성을 깨운다.

그래서 미국의 문인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봄에 대해 이처럼 멋진 글을 남겼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감동하는가에 따라 당신의 건강을 체크하라. 당신 속에 자연의 깨어남에 대해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의 기대로 마음이 설레어 잠에서 떨쳐 일어나지 않는다면, 첫 파랑새의 지저귐이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눈치채라. 당신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올해는 예년보다 화신이 며칠 빠를 것이라 한다.

벌써 남도에선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겨울 몇 번이나 성급하게 꽃을 피워대던 개나리는 '이제야말로!' 라며 부지런을 떨고 있고, 솜털로 뒤덮인 목련 꽃망울도 나날이 통통해지고 있다.

머지않아 온 천지는 한순간에 봄꽃들로 환해질 것이다.

겨울의 우중충한 흔적을 걷어내기 위해 봄꽃나무들은 잎보다도 먼저 꽃부터 피워낸다.

세상을 환히 밝히려는 그것들의 사명감 앞에선 꽃샘바람의 앙탈도 그저 애교스러울 뿐.

대지는 새 봄의 생명력으로 충일해져 가는데, 대구는 깊은 슬픔에 잠겨있고 지구촌엔 전쟁의 연기가 모락거리고…. 전한(前漢)시대때 화친의 볼모로 오랑캐인 흉노족 족장에게 시집간 절세미인 왕소군(王昭君)의 애통한 심정을 동방규가 읊은 시 가운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이 온 것 같지 않다)'이라는 구절이 요즘처럼 가슴에 와닿는 때도 없을 것 같다.

대구 변두리의 한 길가 자그마한 건물 앞에 내걸린 근조 플래카드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서러운 꽃이 되신 님들, 우리 가슴 속에 계십니다'.

2003년 이 새 봄에도 개나리 진달래.벚꽃들은 메마른 세상을 향해 저마다 꽃등불을 환하게 켜들 것이다.

우리들의 가슴 속엔 꽃보다 어여쁜 님들이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피어나겠지.

편집 부국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