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람개비-부시와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범죄를 미리 예견해 범행 전에 범인을 체포한다는 발상의 SF영화다.

세 명의 예지자가 있어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인을 미리 예측하는 서기 2054년 '프리크라임'(Precrime) 시스템이 배경이다.

'과연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것일까'. 인과율을 깨는 SF적인 발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이번 이라크전을 보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미래 사회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

이라크전을 규정하는 명분 중 하나가 '예방 차원의 전쟁'(Preventive War)이다.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를 없애 다가올 미래의 위험을 방지하려는 전쟁이라는 뜻이다.

'예방 전쟁'이란 생소한 용어는 미국인에게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예방 전쟁'이란 개념이 가능했던 것이 바로 부시 미국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다.

북한의 포함 여부로 말이 많았지만, 그 발언의 요체는 미국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선언이었다.

방어가 아닌 잠재적 위험 세력에 대한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악의 축' 발언 이후 양측의 '악 감정'은 종교적인 경지에 이르렀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요지부동 지지율 90%를 지켰으며, 미국민의 부시 전쟁 지지율도 70%를 넘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을 미국과 이라크 근본주의의 충돌로 이해되기도 한다.

테러로 유명한 회교 근본주의가 그렇듯, 근본주의의 목표는 단 하나다.

악의 완전한 제거다.

이미 실행된 악뿐 아니라 악의 씨앗까지도 솎아 낸다는 것이다.

미국 근본주의가 내세운 '예방 전쟁'의 개념이다.

과거 모든 종교전쟁이 그렇듯 악을 물리치기 위한 '라스트 솔류션'(최후의 선택)으로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악을 뿌리뽑는다는 명제는 늘 더 크고 사악한 폭력을 수반했다.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제3세계 종교 전쟁도 다 그랬다.

악의 총체적 제거는 사실 인간의 오만과 독설을 담보한 발상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일어날 수도 있다는 예지를 유일한 논리적 구조로 삼고 있다.

허약한 인간의 판단을 불완전한 예지에 의지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세 명의 예지자 중 한 명, 즉 소수(마이너리티)의 의견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메이저리티)의 예지는 허상이었다.

최근 들어 이라크전이 장기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수술용 메스 같다던 '서지컬 공습'(Surgical air strike)도 무뎌지고, 민간인 사상자도 늘고 있다.

장기전으로 가면 미군의 피해도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과연 부시의 예지는 마이너리티일까, 메이저리티일까.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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