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되새겨 본 지하철 참사

이번 대구지하철 대참사(大慘事)는 단순하게 보면 50대 방화범의 소행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범인을 병원에서 검거했고 구속기소한후 재판절차를 거쳐 상응한 형이 선고되면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는 것이다.

또 유족들이나 실종자 및 부상자 가족들은 그 방화범에게 돌팔매질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해야 이치에 합당하다.

그런데 정작 그 방화범은 정확하게 누구인지조차 시민들의 머리속에서 지워져 버리고 없고 그 '방화범의 자리'에 대구시청, 지하철공사, 경찰, 검찰을 비롯 심지어 지역국회의원들까지 대신 서서 시민들의 원성을 지겹도록 듣고 매질을 당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국무총리이하 각부 장관들까지 나섰다.

가장 혹독한 곤욕을 치른건 조해녕 대구시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의미에선 그 방화범이 저지른 사건을 수습하느라 온갖 고초를 겪은데 대한 보상차원의 감사를 받아야 할 처지인데 사퇴압력까지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통탄할 노릇이다.

미국의 9·11테러 참사처럼 뒷수습을 사려깊고 분별력 있게 잘 마무리지었다면 실제 그럴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일이 이렇게 꼬이고 엉망이 됐는가.

심지어 대구시사고대책본부는 물론 수사를 맡은 지역 경찰청이나 검찰까지 심한 불신을 받은 끝에 급기야 '통제불능'이란 판정을 내린 중앙정부가 직접 수습전면에 나서면서 '대구시정'이 치욕스런 '신탁통치'를 받은것이다.

이게 '민선 자치3기'에 접어든 대구시정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지역민 스스로가 뽑은 시장의 역량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겠다는 '자치(自治)'가 일거에 '관선(官選)체제'로 환원해버린 것이다.

대구시민의 자존심도 함께 구겨져 버린 셈이다.

전세계의 언론이 비춰준 대구시의 모습이 '사고공화국'의 대명사처럼 회자되지 않을지 앞으로도 걱정이다.

그 근본원인은 수백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세계 지하철 사상 유례가 드문 대참사를 너무 안이하게 봤고 서둘러 해치워 버리겠다는 조급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인동 대폭발 참사처럼 시간이 지나고 적당한 보상으로 얼버무리면 시민들은 또 망각할 것이라는 '한국의 고질병'에 기대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니까 대충 처리하겠다는 법의식(法意識)의 실종에다 우리끼리니까 잘 봐줘야 한다는 인정이나 의리문화(義理文化)에서 나온 '적당주의'가 '합리주의'를 배척해 버린 게 두번째 화근이었다.

바로 이 '고질'이 유가족의 분노를 촉발한 근원이자 일이 이렇게 꼬이고 확산된 동기가 된 셈이다.

관계기관대책회의였든 협력회의였든 최소한 사건의 전말을 수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검·경 당국자는 수사에 장애가 되는 행위가 거론됐다면 법(法)부터 먼저 생각했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당시 당선자)이 현장 방문한다는 것을 의식했음인지 서둘러 현장을 치우자는 제안이 누구에 의해 나왔든 '안된다'고 할 사람은 그렇게 주장하고 그걸 관철 시켰어야 했다.

협조와 본연의 임무를 착각하면 우리의 법치(法治)는 그때부터 무너지는 것이다.

결국 축소·은폐의혹이 유족들의 분노로, 시민단체의 적극 개입으로 나타나면서 '퇴진압력'에 몰린 조해녕 시장 주변에선 선거를 노리는 '정치적 움직임'이 있다는 의구심이 일면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져 버렸다는 설(說)도 있다.

이 대목에선 자연 지역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무기력한 행태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시정(市政)과 정당을 엄격하게 구분, 응당 지역 국회의원들은 시정의 잘못을 강하게 질책하고 유족들을 적극 보듬어 안아야 했다.

정작 민주당 의원들이 검·경을 방문, 엄히 질책하고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하도록 기선을 왜 뺏겼는지 깊이 반성해 봐야 한다.

이게 바로 민주당으로 하여금 개혁 정당으로 체질을 개선해 TK교두보 확보에 나설 수 있는 호기를 한나라당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 형국이 아닌가. 그러잖아도 이번 사건 수습 과정을 보면서 '한나라당 일색'은 이젠 안되겠다는 의식이 조금씩 시민들 속에서 움트는 터였다.

'지역 정서'에 편성, 특정당 말뚝만 박아도 표는 나온다는 등식은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더 이상 허용 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이번 대선(大選)이후의 허탈 끝에 나오고 있다.

이게 인물론(人物論)이다.

이래서 '대구지하철 대참사'는 그 속에 우리사회에 농축된 구시대적 고질이 낱낱이 드러났고 그 치유책으로 어떤 변화를 갈망하는 새바람이 이는 모티브가 될 공산이 짙다.

(박창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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