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먹과 모더니즘의 결합

'외유내강(外柔內强)'이란 말은 작가 김호득(54.영남대 동양화과 교수)씨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

겉으로는 다변에 위트가 넘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갈무리된 치열한 작가정신이 상대를 탄복케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구의 몇 안되는 '전국구' 작가로, 끊임없이 한국화단의 기대를 모으는 이유인지 모른다.

'먹과 모더니즘'을 완벽하게 결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15일부터 5월7일까지 이현갤러리(053-428-2234)에서 열 한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내공(內功)'이 있는 작가=붓질의 힘과 기세, 표현력은 내공에서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사처럼 위에서 아래로(혹은 옆으로) 단 한번에 내리긋는 격렬한 붓질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점을 생각하면 새삼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내공이란 끊임없는 노력과 고민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가 이번 개인전에 붙인 '사이'라는 제목만 봐도, 상당한 공력이 느껴진다.

흑과 백, 형태와 구성, 시간과 공간, 비움과 채움 사이의 반목과 대치, 그리고 화해 과정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추상적이고 미니멀한 그림속에 철학적인 화두를 숨겨두고 있는 셈이다.

▷술을 끊고 나니?=한창때 그의 술 솜씨는 이름높았다.

아트페어에 참가한 며칠동안 외국 호텔방에서 혼자 한 트렁크 분량의 소주를 마셨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전한다.

97년 힘이 넘쳐나는 '폭포'시리즈를 그만 둔 것도 술을 끊은 직후이다.

그뒤 한지에 무수하게 점을 찍어나가는 '흔들림-문득'시리즈에 몰두했다.

그때 화단에서 유행하던 우스갯소리가 "술을 끊고난 혹독한(?) 대가가 바로 이런 작품"이었을 정도. 힘과 격정에서 관조적이고 사색적인 경향으로 확 바뀌었으니 그럴 수밖에.

이번에는 큰 획을 살리는 힘있는 작업과 반복적으로 점을 찍어나가는 작업을 함께 내놓았다.

"술을 마실 때는 변화무쌍하고 다이내믹한 느낌에 취하는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이고, 그런 과정에 있었을 뿐인데 좀 억울한 평가죠"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격렬함을 뛰어넘어 더욱 깊고 원숙한 맛을 준다.

▷"김선생, 색깔 좀 넣지 그래…"=그가 쓰는 색은 먹 한가지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사물과 철학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전혀 없단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몇가지 색을 써봤지만, 갈수록 색깔이 필요없음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주위에서 대중성을 위해 색깔을 써라는 충고(?)를 많이 받는다.

그는 "팔리는 작가보다는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로 그냥 남죠, 뭐"라고 웃는다.

"현재 내 그림은 과도기"라고 말하는 그가 찾아내고 다듬어놓은 한국화의 모더니즘이 어떤 형태로 나아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괜찮겠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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