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식산업 컨설턴트 김귀순씨

병원에 의사가 있다면 식당엔 김귀순(44·여)씨가 있다.

그는 '외식산업 컨설턴트'.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외식업계에 몸 담은 사람들 가운데 그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1995년 본격적으로 외식산업 컨설턴트를 시작한 이래 김씨의 도움을 받은 식당은 모두 1천여개. 대구·경북의 알만한 유명 음식점 대다수가 김씨의 '치료'를 받고 승승장구했다.

대구 수성구의 한 고깃집 주인은 김씨 지도로 국내에 설정된 요리 공인 자격증 5개를 모두 딴 뒤 자신의 가게 밑반찬 구도를 바꿨다.

그런 뒤 가게는 맛 좋은 집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구미의 한 복어집도 김씨의 손을 거친 뒤 유명해졌다.

밑반찬부터 바꾸라는 김씨의 조언에 따른 후 부근 경쟁업소를 제치기 시작했다.

김씨는 컨설팅을 통해 월평균 500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번다.

건당 1천만원짜리 컨설팅 계약도 있다.

물론 일시불. 김씨 스스로 컨설팅에 자신을 갖고 있고 의뢰자도 김씨의 명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이 알려지면서 요즘은 시간이 없어 일감을 못받을 정도이다.

오전 9시쯤 일과를 시작해 새벽 1시를 넘겨야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 만큼 바쁘다.

그의 휴대전화는 한밤중에도 울린다.

"갈비맛이 안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등의 질문이 휴대전화 저편에서 쏟아진다.

김씨의 삶을 들여다 보면, 밑거름 없는 열매란 없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업주부였던 김씨는 밑바닥에서 출발, 컨설턴트 겸 교수(경북과학대 조리아카데미)의 위치에까지 올랐다.

"1986년 아시안게임 전이었어요. 언론에서 외국 손님이 온다고 떠들었죠. 그런데 갑자기 외국인들이 뭘 먹을까 하는 생각이 납디다.

'아하, 내가 이 길을 한번 개척해야겠구나' 하는 결심을 그 때 했어요".

김씨는 자신의 외식산업 컨설턴트 입문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지만, 곧 '진짜 이유'를 털어놨다.

"남편이 공무원인데 월급이 너무 적은 거예요. 옛날 남편 월급은 한 달에 10만원이 안됐어요. 쌀 1말 값이 1만8천원이었으니 얼마나 박봉입니까?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 싶었죠. 지금은 남편 월급도 꽤 불어났지만 당시로선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미래가 캄캄했습니다".

김씨는 '식당'을 알기 위해 1987년 대구 옛 궁전예식장 부근 예식장 전문 식당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결혼식이 있는 날엔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16시간을 일했다.

하루 일과의 마지막인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 식으로 1987년부터 만 5년 동안 전국의 식당을 돌며 설거지·청소 등 허드렛일을 통해 어깨너머로 음식을 배웠다.

전주 한정식집의 밑반찬, 마산의 찜과 해물탕, 부산의 복어, 속리산 산채요리 등 전국의 유명 음식을 섭렵했다.

첫 차로 외지까지 나가 일한 뒤 저녁엔 꼭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의 밥을 챙겼다.

1인2역,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김씨는 1992년부터 출장요리사 일을 시작했다.

당시는 경기 호황으로 외식산업에 날개가 달렸던 시절. 그는 하루 100만원도 벌어봤다고 했다.

일년만에 24평짜리 아파트 1채를 살 만큼 큰 돈을 만졌다.

현장을 제대로 익힌 만큼 그의 '컨설턴트' 입문 행로는 고속도로였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컨설턴트로 나섰다.

첫 손님을 잡고 나니 컨설팅 의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컨설팅 이론을 익히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장 경험은 풍부하지만 이론엔 약하기 때문. 경북과학대 호텔외식산업과, 부산 영산대 호텔경영학과 등을 거쳐 지금도 계명대 관광경영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다.

"주부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이 요리잖아요. 자신이 정말 잘 하는 요리가 있다면 직접 차리는 것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컨설턴트'도 훌륭한 직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컨설턴트는 불경기를 타지 않습니다.

불경기 때는 오히려 SOS가 더 많이 들어옵니다".

그는 음식은 훌륭한 상품이라고 했다.

외식산업은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높은 벤처산업이라는 것이다.

"7년간 제 스스로 연구해 초고추장을 개발했고, 각종 소스, 그리고 갖가지 종류의 김치도 만들어 놨습니다.

물론 맛이 뛰어나지요. 앞으로는 특허도 얻을 겁니다.

이렇게 음식업에는 다양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접하지 않고는 안되는 재화니까, 수요가 엄청난 '대박산업'입니다".

김씨는 컨설팅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식당 창업자들이 전문성 없이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내 아내가 평소 해 준 음식이 너무 맛 있어 대충 식당을 차렸더니 장사가 안되더라"는 식이라는 얘기였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 입맛에 맞다고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봐서는 안됩니다.

또 유행 타는 음식을 만들면 안됩니다.

결국 가장 무난한 것은 한정식이에요. 가장 흔한지만 실패 확률도 낮습니다".

김씨는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너무 만족스러워 자녀들에게도 이 길을 권한다고 했다.

초교 5년생 아들이 요리에 큰 관심을 가져 다행이라고도 했다.

그는 요즘 책을 쓸 준비를 한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각종 요리비법을 서술해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 온 일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