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현실'에 굴복한 접대비 '개혁'

국세청은 골프장과 룸살롱에서 사용한 기업 접대비를 손비(損費)처리 항목에서 제외하려던 당초의 방침을 백지화했다.

이로써 정부의 새로운 기업 접대문화 창조 노력은 또 한차례 벽에 부딪힌 셈이다.

발표 때부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많았던 접대비 문제였다.

결국 현실에 밀려 '원위치'하는 바람에 국세청의 '세정 혁신'계획도 후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재경부는 1일 "특정 업종을 지정해 접대비를 비용 처리해주지 않겠다는 국세청의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은 만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의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최근 내수경기가 침체된 상태에서 지나친 규제는 기업활동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데다 기업들이 다른 편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아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불과 20일만에 당시의 단호한 '개혁 의지'와는 동떨어진 자세를 보인 것은 다소 실망스럽다.

이용섭 국세청장은 지난달 10일 "국세청장 재임기간 중에는 골프를 하지 않겠다"면서 지난해 기업들이 접대비로 총 4조7천억원을 지출했고, 이중 골프와 룸살롱 이용에 따른 접대비가 39%로 약 1조8천억원이나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유흥·접대문화를 바로잡기위해 룸살롱 등 유흥업소와 골프장·헬스장·승마장에서 기업들이 사용한 접대비는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향락성'으로 간주, 손비인정 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것이다.

우리는 접대비 문제의 백지화를 보면서 손발이 맞지않는 정부 부처간의 부조화(不調和)를 우려하지 않을 수없다.

물론 우리 경제의 앞날이 지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비록 '원칙론'은 옳다하더라도 기업활동에 독약이나 다름없는 접대비 불인정을 고집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문제는 접대비같이 민감한 경제 문제들은 함부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섣불리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가 슬그머니 다시 집어넣는다면 이미 그 칼은 녹슨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개혁'이라면 애당초 시작을 말아야한다.

정부는 스스로 신뢰를 잃게되고 그로인한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는 높아만 갈 것이다.

기업의 접대비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IMF(국제통화기금)가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있는 사안이 아닌가. 실현되지 못할 개혁은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국민에게 '피로감'만 준다는 사실을 새삼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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