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동학대 가해부모도 치료 필요

"엄마, 나 아빠집에 안 가도 되지?" "그래, 절대 안 보낼게".

지난 12일 낮 대구 아동학대예방센터 사무실(신암동). 한 40대 엄마가 13살, 10살 난 초교생 아들 형제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헤어진 전 남편이 아이들을 학대한다며 며칠 전 아동학대 신고 전화 1391로 연락했던 것.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듯 이정아 상담팀장(34.여.사회복지사)이 상담을 맡았다.

엄마의 입에선 믿기 힘든 말들이 흘러나왔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아빠가 작은 아들의 목을 조르고 계단에서 밀어뜨리거나 쇠파이프와 손으로 폭행해 왔다는 것. 지난 밤엔 함께 죽자는 아빠가 무서워 형제가 집을 뛰쳐 나와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했다.

엄마는 자신도 10여년간 남편에 의해 학대 받다가 끝내 이혼을 결심했지만, 아이들의 학대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아빠의 보복이 두려워 아이들이 입을 닫았던 것.

내려진 처방은 단호했다.

'아이들은 복지시설에 일시 보호하고 양육권 변경을 도울 것'. 이 팀장은 "아이들의 아빠를 설득해 보겠지만 남의 가정 문제에 웬 참견이냐고 나설 게 뻔하다"며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 한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

이 팀장은 6명의 상담원과 함께 근무하는 이 센터의 최고참. 1391 신고전화가 24시간 열려있기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한다고 했다.

한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가끔 아동 학대 문제를 접하곤 했다는 이 팀장은 그때만 해도 별달리 손 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적었던 반면 친권은 치외법권처럼 통용됐던 것.

"문제 가정을 함께 찾은 경찰관조차 부모를 타이르기만 할 뿐 적극 개입을 꺼렸어요. 사정이 그런데 사법권도 없는 일개 사회복지사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2000년 10월 예방센터가 설립되면서 옮겨 왔다는 이 팀장은 문제 가정들의 인식은 지금도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아동학대 현장조사를 위해 찾아가는 집들의 앞엔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애들이 돈을 훔쳐서" "집을 나가서" 때렸다고 변명하며 문을 닫아 건다.

학대의 원죄가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하려는 아버지는 없다.

고자질했다고 되레 아이들을 더 학대하기 십상이다.

2년6개월간 상담해 오는 동안 별별 부모를 다 만났다.

밥을 안먹는다고 아이의 목을 잡고 베란다에서 떨어뜨릴 것처럼 위협한 아버지도 있었다.

종교적 믿음을 이유로 초교생 아들에게 매일 새벽 수많은 절을 강요한 부모도 있었다.

뜨거운 물을 끼얹어 화상을 입힌 경우도 있고, 눈물로 선처를 호소해 아이를 집으로 데려 가서는 처절하게 '보복'한 아버지도 있었다.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부모를 피해 가출한 아이를 수소문해 찾으려 먼 곳으로 출장까지 간 일도 있다고 했다.

어떤 가정과는 10개월에 걸쳐 75차례나 상담해야 했다.

이 팀장은 "아동학대 문제 해결에 정작 필요한 가해자의 치료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근본적인 원인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이 귀가해 봐야 학대가 재발될 수밖에 없지만, 법률이 부모에 대한 조치권은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 아동만 3일간 부모로부터 떼어 놓거나 복지시설.병원에 일시보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팀장은 주변의 더 많은 관심을 주문했다.

학대 가정을 찾기 위해 경찰에 동행을 요청하려면 이유 설명에만도 1시간이나 필요하다고 했다.

아동복지법은 시설 종사자,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교사, 의료인 등을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작년 대구에서 접수된 135건의 신고 중 이들에 의해 이뤄진 것은 10%(14건)뿐이었다고도 했다.

"아동학대는 5년 이하의 징역,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분명한 범죄입니다.

피해 아동이 치유받지 않으면 커서 자신도 학대를 되풀이할 수 있는 무서운 행위입니다". 아동학대를 '조용한 학살'이라 부르기도 한 이 팀장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70여명의 '사랑 지킴이단'과 함께 오늘도 학대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점검한다.

작년 대구에서 학대 판정을 받은 98건 중 11건의 아동들은 시설에 보호 조치되고 20건의 아동은 친척에게 맡겨졌지만 61건의 아이들은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졌기 때문이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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