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億)은 돼야 "좀 번다"고 쳐 주는 시대. 문영석(35)·정해선(33)씨 부부는 30대 중반이지만 연간 1억원대 순수익을 올리며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업종은 '첨단'과는 반대편에 선 듯이 느껴질 떡집이다.
대구 감삼동 서남시장 안 '장수떡집'. 화려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재래시장 한 쪽의 가게, 겉으로는 허술하기만 해 보이는 이 곳이 문씨 부부의 성공 현장이다.
요즘의 월 평균 매출은 2천여만원, 그 중 절반 이상이 순수익으로 남는다.
가게는 달서구에 있지만 주문은 대구 전역에서 온다.
동네 떡집 수준을 이미 넘어선 것. 정기적으로 떡을 가져가는 고객만 수백명에 이른다.
배달량이 많아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쉴새 없이 드나든다.
1994년 가을 개업. 올해로 10년차다.
외환위기 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가게 매출 곡선이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다.
피자 열풍이 불고 햄버거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는 등 거센 패스트푸드 물결이 전통 음식 떡의 숨통을 죄려 했지만, 이 가게는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문씨 부부는 장수떡집이 '장수'하는 비결은 "오로지 맛"이라고 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맛은 지켜야 하는 것이 떡집이라고도 했다.
부부가 다음으로 중요시한 것은 신뢰. 개업 때부터 맛 좋다고 인정 받아야 하고, 손님을 대하는데 연습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떡 장사 시작 전에는 덤프트럭을 몰았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화물연대 파업을 보면서 지난 세월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그때만 해도 떡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화물차 운전이 가진 기술의 전부였지요".
문씨는 알고 지내던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떡집 하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고 했다.
그 덕분에 자신도 미래가 불확실한 운전대를 놓고 떡에 승부를 걸기로 결심했다는 것.
1992년 서남시장 인근 한 방앗간 구석에서 2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갓 결혼한 아내와 함께 떡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대구는 물론 안동, 서울, 광주, 전주 등의 유명하다는 떡집을 거의 돌아다녔다.
어깨 너머로 보거나 들은 기술을 방앗간 구석에서 '실험'을 했다.
맛이 나오지 않아 버린 떡쌀만도 수십 가마는 될 것이라고 했다.
"열심히 배우려 한 만큼 성과가 있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진리는 좋은 쌀이 떡 맛을 결정하는 근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지방 쌀을 다 써봤다고 했다.
경남 합천, 경북 안동, 전라도의 쌀들이 그의 선택을 거쳐갔다.
2년 전부터 쓰고 있는 것은 고령 쌀. 장수떡집이 목표로 하는 떡맛에 제격임이 확인됐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염도와 당도입니다.
떡장사 10년이 다돼 가지만 저는 아직도 정량 저울에 달아 염도와 당도를 조절합니다.
눈 대중으로 하면 맛도 대충 나고 맙니다". 문씨 부부는 떡집 운영에 또하나의 기준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시각적 효과를 노려 색깔을 낼 때엔 쑥이나 호박 등을 사용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최대한 색깔내기를 줄인다는 것.
이런 제조상의 기술 외에 문씨 부부는 재고 관리나 마케팅에서도 많은 노하우를 쌓은 것 같았다.
특히 떡은 재고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떡은 방부제를 안쓰기 때문에 수명이 하루뿐이라는 것. 그래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부담된다고 했다.
"잔뜩 만들어 놓은 떡이 안 팔리면 속 타지요. 1998년 여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사태 후 첫 여름이었습니다.
하루 100만원 되던 매출이 갑자기 7만원으로 떨어진 것이었지요. 재고 관리가 심각했습니다.
정말 아찔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가 이들 부부에게 또다른 기술을 일깨웠다.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그 기술을 쌓게 한 것. 가만히 앉아서 오는 손님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은 그때 얻었다.
광고지를 돌리며 밖으로 세일즈에 나섰다.
진열대 떡 배열에도 마음을 쓰게 됐다.
시식 코너를 만들어 손님들의 입을 통해 다른 손님의 지갑이 저절로 열리게 했다.
부부가 깨우친 것 중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도(商道)인 듯했다.
"이윤을 많이 내려고 나쁜 재료를 쓰다보면 당장엔 이익이 많아지겠지만 결국엔 손님을 다 내쫓습니다.
수요가 많은 창업 아이템이라 해서 쉽게 돈벌려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입니다". 욕심 내서 얻으려 했다가는 오히려 잃는 것이 장사라고 했다.
"떡 장사가 되겠느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가 떡을 먹느냐는 얘기지요. 하지만 전통 식품일수록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고정 수요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집안 행사 때 떡 대신 빵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까. 젊은 사람도 떡을 찾아요. 수요가 많은 만큼 창업 아이템으로 흠이 적은 셈이지요". 부인 정씨는 떡 장사의 장점을 여러가지로 강조했다.
"덤프트럭 몰다가 이만큼 돈 벌었으면 됐다 싶기도 하지만, 지금은 다른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려고 학원 설립을 생각 중입니다.
제가 만든 떡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 기술을 전수 받아 돈 많이 버는 사람 보는 것도 재미 아니겠습니까?" 문씨는 떡 분야에서 전문가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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