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촌 하면 술집, 식당 등 극히 일부 업종만이 성업했으나 요즘은 다양성을 반영하듯 구색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업종에 따라 사라지고 뜨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그 어느곳보다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이나 업종이 뜰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장이 됐다고 말할 정도다.
대학촌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밤이면 골목마다 젊은이들로 불야성을 이뤄 흥청망청 비틀거린다.
그러나 아침이면 간밤에 나온 쓰레기들이 말끔히 치워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산하다.
대부분 점심때쯤 가게 문을 열어 영업을 준비하는 등 낮 활동은 늦게 시작된다.
대구가톨릭대학과 경일대, 경동정보대가 들어선 하양읍은 영남대 주변과는 또다른 모습의 대학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은 3만명이 넘는 주민과 하루 2만, 3만여명의 대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생활한다.
이들 3개 대학은 주민들의 생활과 상권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레인보우거리'로 불린 대구은행 하양지점∼부림예식장 간 70여m의 좁은 골목은 대학생들만의 공간으로, 하양의 명물이었다.
뒤에는 '비둘기골목'으로 이름이 바뀐 이곳은 '꽃'(당시 효성여대생)을 찾아 대구에서는 물론 인근 영남.대구대생 등 '나비'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 먹을거리와 놀거리를 해결하고는 흩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골목이다.
이 골목 양쪽에는 레스토랑과 호프집, 식당, 소극장 등 있을만한 것은 거의 다 있었다.
비둘기골목에서 13년간 식당을 했다는 황상수(49)씨는 "남.여 대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면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둘기골목은 대구의 중앙통을 방불할 정도로 젊은이들로 북적댔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이 골목도 90년대 중반부터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급속도로 상권이 쇠락해 지금은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다.
대구대 주변인 진량읍 내리.평사리 등과, 대구가톨릭대 등 학교 주변에 상가가 하나 둘씩 들어서면서 상권이 이동, 분산됐기 때문이다.
읍단위로는 드물게 하양읍에는 유명 패스트푸드점이 3개나 되고, 국내 유명 메이커 의류.신발 대리점은 다 있을 정도죠. 또한 30여개의 의류점과 10개가 넘는 휴대전화 대리점, 360여개의 음식점이 성업중이다.
이는 대학촌이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는 한동환(47.식당업)씨.
70년대초 영남대가 대명동 캠퍼스에서 이전해 올 때까지만 해도 대학 주변은 논으로 둘러싸인 허허벌판이었다.
조영동에서 3대째 살고 있다는 곽기순(63) 통장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조영.삼풍동과 남매지 주변에 허름한 집들을 개조해 자취방을 내 줄 정도였다.
상가라고는 자취촌 주변에 드물게 구멍가게만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난 81년부터 지금까지 영남대 정문앞에서 식당과 슈퍼마켓을 하는 이수덕(50)씨. "처음 장사할 때만 해도 정문 앞에는 상가 건물이라고는 3, 4개에 불과하고 대부분 논이고 야산이었다.
상가는 86, 87년쯤부터, 원룸은 2, 3년전부터 몇개씩 신축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남대 정문앞 상가들은 대부분 주인이 따로 있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장사를 한다.
상인들은 "그래도 장사가 잘 되는 편이라고 해 세가 어느곳보다 비싼 편이다.
영대 정문 앞 큰 도로변 상가는 호프집의 경우 보증금 2억~4억원에 월 300만~400만원 정도지만 불황을 모를 정도다.
하지만 뒷골목들은 높은 세에 비해 장사가 잘 안돼 주인이 자주 바뀐다"고 말한다.
대학가 앞은 시대와 유행에 따라 업종의 부침이 심하다.
"한때 유행하던 당구장이 자취를 감추고 오락실은 대형화됐다.
다른 도시 노래방들은 거의 오후 5시 이후 영업을 하지만 대학가는 오후 1, 2시면 영업을 시작하고 가격도 시간당 3천원 정도로 싸다.
낮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라고 말하는 경신시청 송정갑 문화담당자의 말이다.
한 때 인기를 끌던 PC방은 원룸의 등장으로 줄고 있다.
비디오방은 어느새 입체음향에 대형화면, 푹신한 의자가 딸린 DVD(Digital Versatile Disc)방에 하나둘씩 자리를 내주는 등 유행에 따라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주기가 1, 2년에 불과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다.
서점은 사회과학책을 구입할 수 있는 남도책방을 비롯해 2곳에 불과하다.
13개 대학생들이 대거 몰리는 영남대 주변에조차 이들이 모여 토론하고 자신들의 끼를 발산할 문화공간 하나 없다.
이들이 모일 구심점이 없는 것이다.
늘어나는 것은 술집 등 소비적인 유흥업소들. 입학하자마자 취업준비에 매달리는 현실의 한편에서는 성인사회의 과소비와 향락풍조가 더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
영남대 출신 김영석(38)씨는 "감자탕에 막걸리 마시면서 시국을 걱정하고 밤새 읽은 책을 토론하던 시대는 아득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고 말했다.
영남대 비정규직교수(강사) 윤병태씨는 "신자유주의 시대정신이 대학을 '취업훈련소'로 격하시켰고, 대학문화도 소비향락적인 대중문화 산업기지로 전락했다"고 평가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것 같다.
취업을 위해 도서관에서 사는 학구파들이 많은 반면, 상당수가 용돈이나 과외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에 여유가 있어 과소비와 향락에 휩쓸리는 바람에 비난을 받기도 한다"는 영남대 박윤경(여.정치외교학과 2년)씨.
지역민들은 "13개 대학이 주민들의 생활에 긍정.부정적이든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며 "보다 건전하고 생동감 넘치는 대학촌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과 상인, 지역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산 대학촌에서 심각한 문제는 신설대학 주변에는 학생들이 딱히 갈만한 곳조차 없다는 것이다.
대구외대 한 학생은 "학교 주변에서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해서 대구 동성로나 영남대 주변 등 학생들이 몰리지만 놀고 먹고 마시는 곳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영남대 민족연구소 김태원 박사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인 시장경제원리가 대학문화에도 예외없이 확산돼 취업, 소비, 감각을 충족시켜 줄 것만 찾고 있다"며 "대학구성원들이 스스로의 내적 고뇌와 성찰을 통해 사회모순 비판과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하는 등 새로운 대학문화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