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의 자(尺)에 맞추어서 판단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기준에서 어긋나면 그것은 새롭거나 특이한 것이 되며, 또 때로는 그것이 틀렸다고 서슴없이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잣대가 일면적이고 편협할 때에는 나의 생각이 특이한 것이 되거나 혹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쉽게 간과하고 만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내 판단이 그른 줄을 모른 채 스스로 바르다고 착각하면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 가운데 하나가 '요동시(遼東豕)'이다.
이 말은 '요동의 돼지'라는 뜻인데, 그 속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요동의 한 농부가 기르던 돼지가 새끼를 낳았다.
그런데 갓 태어난 새끼 돼지 가운데 한 마리는 주둥이 부분이 여느 것과는 다르게 흰색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검정색의 돼지만 보아왔기 때문에 세상의 돼지란 모두 다 검은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주둥이가 하얀 돼지가 태어났으니 그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새끼 돼지를 귀하게 여겨서 황제에게 진상하겠다고 안고 황도로 향하였다.
추측건대, 그는 그 돼지를 정성스럽게 안고 자랑스럽게 길을 재촉하였을 것이다.
도중에 하동에 이르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의 돼지는 모두 흰색뿐이었다.
그 농부가 하동에서 받았던 충격과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요동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으며, 또 착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라고 칭송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변에서 살펴지는 사물이나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하였고, 그래서 다른 세상도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어디 한두 가지뿐이랴? 그리고 동기야 어찌 되었건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도 또 '요동시'를 안고 기쁜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는 나 또는 우리들의 적나라한 실체를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선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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