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60트렌드 읽기-로또에 당첨되면

꿈같은 상상이다.

'로또에 당첨된다면'이란 질문에 답하는 이들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100억원이 생긴다면'이란 가정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부동산 구입, 해외여행, 이민, 성형수술, 명품 구입 등 그동안 돈 없어 못한 일들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마술 카드'가 생기는 것이다.

50여 명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면서 가장 특이한 것은 대부분이 "나 혼자 잘 살면 뭐 하노"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절반을 뚝 떼어 남을 위해 쓰겠다"는 이가 20대부터 60대까지 공통된 의견. 유니세프, 복지기관, 가난한 이웃과 가족 등 돈 없어 못 도운 것이 어지간히 '한' 맺혔던 모양이다.

심지어 한 응답자는 이리저리 꼽아 보더니 "100억원도 모자라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진우 계명대 철학과 교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며 "감정은 순수하지만,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 질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직접 경험한 경우에만 행동하는 한국인의 기증 문화를 감안할 때 심리적 보상일 뿐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럼에도 정색을 하고 "남을 위해 쓰겠다"는 이들에게서 태생적으로 불온한 '일확천금의 꿈', 로또를 통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엿볼 수 있었다.

▲20·30대

20대는 '편하게 살겠다', 30대는 '개인 사업 시작'으로 요약됐다.

30대는 '당장 사표를 내겠다'는 이가 많았다.

김정우(36·직장인)씨는 "당첨되면 바로 사표를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겠다"며 "나 만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사업은 비교적 손쉬운 패스트푸드점이 많았다.

관리가 편하고, 고정적인 수입에 시간이 자유로운 부업차원의 사업들이다.

차, 오디오, 넓은 아파트를 구입하고 여가 시간은 해외여행을 다니겠다는, 비교적 개인의 행복을 위한 용도가 대부분이었다.

"시간 많고 돈 많겠다 고민하며 살 필요가 뭐 있냐"는 것이 30대의 압도적인 생각이다.

30대 남자의 경우 직장에 대한 갈등을 로또복권을 통해 한꺼번에 해소하겠다는 욕구도 많았다.

이민구(35·직장인)씨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매입해 그동안 괴롭히던 상사를 부하로 거느리겠다"고 했다.

30대 여자의 경우 그동안 바빠서 못 간 해외여행을 '원 없이' 다니겠다는 이가 많았다.

유은유(33)씨는 "애들 학교도 그만 두고 가족들이 함께 1~2년 해외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20대는 학업, 여행, 사업 등 다양한 의견. 아직 사회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탓에 '저축'으로 '앞날을 도모하겠다'는 이도 많았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성형 수술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김혜영(23·학생)씨는 "외국에 나가 여행도 하고, 성형 수술도 하고, 그렇게 몇 년 살다가 국내에 들어오면 알아 볼 사람 있을까요?"라고 했다.

다른 세대와 달리 20~30대는 '자기 변신'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현재의 불만을 일거에 바꿔 '신데렐라'나 '백기사'처럼 살겠다는 것이다.

미래나 사회에 대한 관심 보다 자신의 행복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40·50·60대

40대는 '사업 확장', 50대는 '노후 대책'이며 공통적으로 '이민'과 '자식 교육'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로또를 통해 현 상황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이가 많았다.

'당장 직장과 일을 그만두겠다'는 30대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의무가 개인의 행복보다 강한 것이 특징.

권호영(47·개인사업)씨는 "자금이 부족해 애를 먹고 있다"면서 "사채라도 끌어다 써야 될 판에 로또가 당첨되면 고민은 한꺼번에 해결된다"며 사업에 로또 당첨금을 쓰겠다고 했다.

또 자녀에 대한 교육열도 강했다.

최원영(45·직장인)씨는 "여한 없이 과외를 받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필요하다면 유학이든 해외 연수든 자식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것이 40대 후반 남자의 반응. 또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을 고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10억원만 있으면 투자이민이 가능한데, 뉴질랜드 같은 곳에 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의견도 많았다.

50대는 노후 대책과 건강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정홍우(56)씨는 "어쨌든 건강해야지. 돈도 있겠다 오래 살면서 좋은 것 많이 봐야죠"라고 했다.

특히 한 두 가지 건강상 문제가 생기는 세대다 보니 "외국에 나가 병 고쳐 오겠다"는 이들도 많았다.

'60대 중에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이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경상감영공원에서 만난 10여 명의 60, 70대 중에 2명이 '구입한다'고 했다.

고정남(67) 할아버지는 "못난 자식 때문이 한이 된다"며 복권을 보여주었다.

"시도하는 사업마다 망해 건강까지 나쁜 둘째 아들을 위해 매주 구입한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정이 남다른 것이 50대와 60대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서였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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