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후흑학(厚黑學)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를 말한다.

정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종교적 가르침에 어긋나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반(反)도덕성.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는 정치적 사고를 뜻한다.

마키아벨리의 저술에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신의가 두텁고 종교심도 많으며 인격도 고결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그럴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그의 주장은 낡은 도덕이나 종교를 타파하고 그에 구속되지 않는 강력한 지배자를 탄생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본뜻은 이해되지 않고, 도덕.종교의 부정이라는 일면만이 강조되어 마키아벨리즘은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이렇게 곡해된 것을 빗대어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사후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동양에도 마키아벨리와 비슷한 인물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80년대 말 우리나라에 소개된 청나라 말 사천(泗川) 출신의 리쭝우(李宗吾)가 그 사람이다.

요즘 출판가에서 새로이 조명되는 그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소리 친 유가(儒家) 비판론자였다.

리쭝우는 역대 중국의 역사에서 치세의 교훈을 얻고자 고심하다 통치는 곧 후흑(厚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유방(劉邦) 조조(曹操) 유비(劉備) 같은 통치자들이 유가적 인의와 정의를 앞세우는 척 했지만, 그 본질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이었다는 것이다.

통치자의 진면목이란 낯두껍고 속이 시커먼 것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리쭝우는 뻔뻔스러움과 음흉함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았다.

사리사욕을 위해 후흑을 사용하면 자신을 망치지만, 대의명분을 위해 사용하면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열강의 중국 침략을 막는 길도 후흑뿐이라고 믿었다.

그 자신 후흑교주가 되어 후흑구국(厚黑求國)의 정신무장을 강조했고, 후흑국 건설에 나서기도 했다.

리쭝우는 그러나 후흑도 권법 배우듯 제대로 익혀야지, 반풍수가 돼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마키아벨리즘과 후흑학은 그 기조가 아주 유사하다.

도덕적 가르침에 매몰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위선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자는 다만 동기의 순수성이 유지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빤히 들여다 보이는 거짓말과 얕은 말싸움으로 국민들에게 혐오감만 주고 있는 우리 정치권이 한 번쯤 귀담아 들어볼 내용인 것 같다.

정치란 결국 대의를 위해 누가 더 멋진 위선을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 아니던가. 물론 반풍수 후흑이 돼서는 곤란하겠지만….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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