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 게임개발 벤처기업 (주)KOG는 지난 달 23일 이 분야 한 전문 일간지로부터 보도자료에 대한 회신을 받았다.
계약내용을 믿을 수 있도록 계약서 사본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KOG가 보낸 보도자료는 자체 개발한 레이싱 게임 '하드코어 4×4'를 세계적 게임유통사인 미국의 XS 게임즈와 최소 보장액 25만 달러, 예상 최소 판매수익 300만 달러의 조건에 계약했다는 내용이었다.
게임시장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별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계약은 사실 우리나라 게임사의 새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순수 국산기술과 한국인 출연진이 제작한 영화가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를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되는 것과 비유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레이싱 게임은 게임중 가장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장르로 분류되어 있어 주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제작해 오고 있다.
KOG의 저력은 이달 14일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포털 중 하나인 넷마블과 3차원 액션 대전게임 '그랜드 체이스' 퍼블리싱 계약으로 다시 한 번 과시됐다.
지방 게임개발사가 전국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포털을 통해 온라인 액션게임을 선보이는 것도 사상 최초다.
2000년 5월 설립, 겨우 3년된 지방의 게임개발사가 이토록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대구에서 세계로'를 외치며 서울중심의 한국사회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KOG인들의 자신감은 실력에서 나온다.
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공대(석사)를 거쳐 조지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종원(40) 대표는 "대구에서 세계적 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게임과 같은 SW(소프트웨어) 분야는 인재만 모을 수 있다면 대구가 오히려 서울보다 유리하다"는 신념을 갖고 KOG(Kingdom Of God)를 설립했다.
기회만 있으면 서울로 떠나려는 세태에 대한 조그만 반란이었다.
이 대표의 신념에 합류한 첫 번째 이단아(?)는 경북대 컴퓨터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경동정보대 겸임교수로 있던 서진택(35) 개발팀장. 1990년 전국SW경진공모전 그래픽SW 부문 금상을 수상하는 등 대학재학 시절만 모두 7번의 각종 경진대회 수상기록을 가진 실력파답게 "대구에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가세했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맨파워가 부족했다.
이 대표의 머리 속에 떠오른 인물은 조지워싱턴대학 수학시절 만났던 백낙훈(37) 박사였다.
당시 백 박사는 KAIST를 수석졸업하고, 컴퓨터 그랙픽스 분야의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조지워싱턴대학의 연구원(포스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백 박사가 대구출신이란 점도 두 사람이 가까워졌던 이유가 됐다.
문제는 백 박사는 이미 서울의 대학에서 교수로서 안정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너나없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드는 세태에서 교수라는 좋은 직장을 버리고, 신생벤처기업으로 그것도 지방의 벤처기업으로 옮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백 박사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대구에 내려온 첫 느낌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서울을 떠나올 때 동료교수들은 '잘 선택했다' '젊어서 좋다' '부럽다'며 축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와 경북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교수가 얼마나 좋은 직장인데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당장 치우고 우리 학교로 옮겨라'며 나무랐습니다".
백 박사는 패기와 도전정신이 약하기는 지역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라며 우려했다.
산업의 중심이 바뀐지 이미 오래됐는데 대학생들조차 대기업과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을 너무나 선호하기 때문에 지역의 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KOG의 백 박사 영입 성공은 또다른 월척(?)을 낚는 터전이 됐다.
대상은 KAIST 박사과정을 수료한 하형진(33) 연구원. 초등학교 시절인 1984년 제1회 정보통신부 퍼스널컴퓨터경진대회 1위를 차지하고, 1989년 전국수학·과학경진대회 수학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하 연구원은 청와대 오찬에 두 번이나 초대될 정도의 수재. 대구과학고 1회 수석졸업과 KAIST 수석입학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XS게임즈와의 계약에 앞서 게임기 X박스에 대한 라이센싱 허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 직원들이 KOG를 방문했을 때 이들은 하 연구원에 대해 "한국 최고의 프로그래머"라고 찬사를 보내고 "MS본사에서 일할 용의가 없느냐"고 제안해 이종원 대표를 긴장시켰다.
"올해 3월 하 연구원의 입사가 확정되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 지 모릅니다.
하 연구원의 영입으로 KOG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일뿐아니라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맨파워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랜드 체이스' 게임을 개발한 이상훈(23·경북대 컴퓨터공학과 3년) 연구원은 경북대 샌드위치 교육프로그램으로 건진 짭짤한 소득이다.
2001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아마추어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전국 공모전 6회 수상 기록을 가진 이 연구원은 "게임 만드는 것이 좋아 KOG에 왔다가 정식직원이 됐다"고 말했다.
이종원 KOG 대표는 "이동훈(31·경북대 컴퓨터공학과 박사수료) 연구원을 포함한 30명 직원 모두 나무랄데가 없다"며 "그동안은 수익원을 찾아 정통부, 산자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의 외부 연구용역 수주에도 노력했지만, 이제는 투자자들이 잇따라 나서고 있는 만큼 게임개발에 주력해 '대구에서 세계로'라는 꿈을 실현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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