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사별.별거 등으로 아버지 혼자 생계와 자녀 양육을 맡고 있는 저소득층 '부자(父子)가정'들이 모자가정보다 더 심각한 위기 속에 방치되고 있다.
그 중에는 아버지 자신들이 노동 의욕 상실, 질병, 알코올 중독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적잖아 아동학대 문제로까지 연결되고 있으나 부자가정을 도울 복지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관계자들은 관심을 촉구했다.
◇부자가정의 그늘=일찍 엄마를 여읜 대진(가명.12.초교5년)이는 6년째 아버지(51.대구 침산동)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늘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다보니 방과 후에도 종일 혼자 보내야 하는 날이 많다.
점심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저녁은 복지관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하지만 아침은 대부분 굶는다.
더 힘든 날은 아버지가 낯선 아줌마와 밤늦게 함께 집으로 오는 날. 이때면 대진이는 한밤중에도 집을 나와 다음날까지 마을 놀이터나 동네 PC방 근처에서 혼자 시간을 때운다고 했다.
자연히 학교를 빼 먹는 일도 잦다.
가족 사랑을 못받다 보니 과격한 행동을 보일 때도 적잖다.
보다못해 사회복지사가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용돈을 넉넉히 주고 있으니 아버지 역할을 충분히 한 것 아니냐"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면 애를 (복지관에) 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놔 더 이상 관여하기 힘들다고 했다.
5년 전 엄마가 가출해 아버지(44.대구 안심)와 둘이 사는 영주(가명.8)는 초교 2년생이지만 쓰기는 물론 한글을 읽기조차 제대로 못한다.
겨우 자기 이름만 쓰는 정도. 학습장애뿐 아니라 정서장애까지 보이는 영주의 정신연령은 5, 6세에 멈춰 있다고 복지사는 말했다.
몸에서 나는 심한 냄새와 꾀죄죄한 모습은 부랑아를 연상시킬 정도. 그러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지낸다.
국가에서 주는 월 30여만원의 생계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 안심종합사회복지관 변지호 복지사는 "영주에겐 집 밖에서 먹고 자는 날이 더 많다"며 "상당수 저소득 부자가정 아이들이 영주와 비슷한 형태로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방치된 사각지대=상당수 아버지들이 마음의 상처와 좌절을 안고 있다보니 자식을 구타하거나 방임하는 학대 사례도 영세 부자가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시 아동학대예방센터에 따르면 2001~2002년 학대 피해 어린이.청소년 166명의 가정을 분석한 결과, 편부가정이 48%로 가장 많았다는 것. 그외는 일반가정 27%, 동거가정 7%, 편모가정 7%, 재혼가정 5%이었다.
대구시 여성정책과 김미경씨는 "부자가정은 편모가정에 비해 자녀 방임, 자포자기형 생활 등 가정해체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역내 영세 부자가정 인구는 대구 1천941명(764가구) 경북 2천741명(979가구) 등 4천680여명(1천740여가구)으로 집계돼 있다.
대구.경북 편모가정 인구 1만9천여명(7천300여 가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것.
그러나 모자가정과 달리 부자가정에 대한 당국의 지원과 관심은 거의 방임 수준이라고 복지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편모가정은 소득원이 불안하다고 보는 반면 편부가정은 그보다 낫다는 인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최근 조기실직, 이혼 등이 많아지면서 실제로는 부자가정들이 급속히 극빈층으로 편입되고 있다고 했다.
부자가정의 어려움이 사회적으로 부각되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모자복지법'을 '모부자복지법'으로 개정했지만 명칭이 바뀌었을 뿐 실질적 지원은 여전히 없는 실정이다.
대구 경우 미혼모나 영세 모자가정을 위한 복지시설은 9개(정원 548명)가 운영되고 있지만 부자가정이 의지할 수 있는 전문시설은 전혀 없고, 부자가정 자조프로그램조차 단 1개뿐이다.
◇어떤 도움 필요하나=대구 유일의 부자가정 자조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안심복지관 시미경 과장은 "저소득 부자가정 가장의 대부분이 일용직 건설잡부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차별화된 자립 지원책이 시급히 개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업을 도울 수 있는 충실한 직업훈련 및 직업 알선 △아버지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공근로 가정봉사원 파견 및 공공 어린이 집 확충 △자녀 학원비 지원 등이 그것.
시 과장은 "경제적 곤란, 근로의욕 상실, 교육.양육 책임의 방임 등 저소득 부자가정의 문제들은 결국 아이들의 성장.정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빈곤의 세습으로까지 악순환된다"며 "국가가 하루빨리 부자가구의 심각한 여건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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