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정회장 이후 남북교류

최근 한반도의 상황변화를 보면 남북간의 교류협력은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핵문제의 논의를 위한 6자회담을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지루하게 끌어왔던 한반도의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사업도 착공되었고 남북경협 4대합의서가 남북 모두에 의하여 국회를 통과하여 그 발효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남한 측 주체였던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은 투신자살로 비명 속에 삶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앞에서 보인 정치권의 행태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총무는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떠났으니 북쪽에서 현대와의 경협계약관련 사실을 날조할까 걱정이 된다'고까지 했다니 우리 민족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까지인가 하는 놀라움이 앞선다.

남북교류협력과 평화적인 신뢰관계 개선을 삐딱한 눈으로 보는 남한의 정치인들은 그처럼 무책임하고 뻔뻔한 행동을 할지 모르지만 민족사업으로 일컬어지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의 당사자인 북한과 현대아산은 그 동안 여러 난관 속에서도 약속을 지켜왔다.

도리어 정쟁에 눈이 어두워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며 민족의 자주적인 노력에 의한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기업인으로서 정 회장이 느꼈을 분노와 좌절을 실감하게 된다.

자신이 사명감을 가지고 해온 사업에 대한 정치권과 특검의 범죄자 취급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으면 달랑 집 한 채만 남은 깡통회사의 회장이고자 했을까? 그의 유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금강산에 묻히기를 원했다.

문제는 향후의 대북협력사업의 향배이다.

북한은 4일 아태평화위 대변인 성명을 통해 금강산 관광의 임시 중단의사를 밝혔다.

금강산관광의 중단기간이 조의기간을 포함하여 일정기간 임시 중단한다는 표현은 중단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6일 예정되었던 4개 경협합의서 발효통지문 교환과 7, 8일 개성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철도 및 도로 연결 실무접촉을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전반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정 회장의 사후 남북간의 민족사업에 대한 소극적 태도라기 보다 향후 남한 내에서 대북 사업의 파트너가 확실히 형성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정 회장은 대북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따라서 북한이 정 회장의 사망을 이유로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킨다면 이는 고인의 민족사업에 대한 기여를 허무는 것이며 그를 자살에 이르도록 조장한 세력들에게 또 다른 빌미를 주는 것이 된다.

문제는 남한 내 대북사업의 추진을 위한 중심축이 조속히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남북경협의 차질없는 진행을 언급하고 있고 현대아산 역시 금강산 관광 계속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동안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핑계로 현대가 전면에 나서 있는 입장이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에 가 있는 남한 여행객들의 신변안전과 같은 정부의 책임마저도 현대와 북한의 합의에 맡겨 놓을 정도로 국민의 보호의무를 유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의무를 저버려 왔던 셈이다.

이제 정부가 전면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그 동안에도 남북간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는 남북 당국간, 북미당국간의 갈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파행을 보여왔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이나 남북간의 철도 및 도로 연결, 그리고 남한기업에 의한 개성공단조성사업 착공 등은 난관을 극복하고 이룬 놀라운 역사의 발전이다.

북한이 밝힌 것처럼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에는 가슴 아픈 희생도 있고 난관도 있을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남북이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자(死者)는 죽음으로 민족공동의 번영이 멈춰 서서는 안되는 역사의 흐름임을 웅변하고 있다.

최철영〈대구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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