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러닝하이를 잊었는가

가슴 아픈 말이지만 우리는 역사만 반 만년이지 한번도 큰 영토를 가져본 적 없고 번듯이 잘 살아본 적도 없다

지난 1961년 1인당 소득은 겨우 81달러, 한 가족 네 식구가 요즘 돈으로 40만원도 안되는 소득으로 일년을 버티었다.

그러나 '가난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는 국민적 여망은 앞만 보고 일하게 하였고 1995년에는 1만 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나 '앞으로 더 번 뒤 내 것을 따질까, 혹은 일단 내 것부터 챙겨놓고 볼까?'라는 과제에서 우리 국민은 성장의 몫 중 제 것부터 챙기기로 했다.

몫 나누기 싸움에서 시작된 내분은 우리경제를 그대로 사그라지게 하고 있다.

혼돈의 우리 경제

나라 전체의 기업 가치가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주가의 40%선에 불과하며 그나마 주식의 37%는 이미 외국인 손에 넘어가 있는 나라. 1996년 260억 달러의 외채를 빌려와 시바스 리걸 생산량의 80%, 30년생 발렌타인 및 로열 살루트 생산량의 3분의 1을 수입하고 스카치 위스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해 마신 나라. 95년 기준이지만 100만원을 연구개발비로 들이면 2만원 수준의 연구성과밖에 내놓지 않고, 나라 전체의 연구비가 미국 제너럴 모터스 한 회사의 연구비의 55% 정도 밖에 안될 만큼 기술투자를 하지 않는 나라. 앞날이 안보이니 빚이나 갚자며 생산시설투자를 줄여 기업부채비율을 지난 일년간 50%나 줄인 나라. 98년 기준이지만 물류비가 미국이나 일본의 2배나 들어 기업 매출액의 17%를 차지, 늘 물류대란의 위험을 안고 있는 나라. 공장설립 인허가 서류가 선진국보다 평균 8.8배나 많은 통제와 규제의 나라. 국내 생산직 임금이 중국, 멕시코, 인도네시아의 한국기업 현지공장보다 5~30배나 많은 나라. 올해 경우 노동자들이 생산에 더 기여한 바는 3%밖에 되지 않으면서 임금은 11%나 더 올려 받을 수 있는 나라. 인구 2천만 명 이상 30개국 중 노사관계 경쟁력이 꼴찌인 나라. 주5일제로 적게는 153일, 많게는 170일로,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나라. 자기 집 마당 앞뒤로는 남의 그림자라도 드리우면 투쟁을 벌이는 나라…. 우리는 제몫 찾기로 성장의 모든 잠재력을 스스로 불태워 재로 만들고 있다.

다시 잘 살 수 있는 길

일본은 1974년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이루었지만 제 몫 찾기를 뒤로 미룬 채 1992년 3만 달러의 국민소득을 올렸고 잃어버린 10년이라지만 이제는 국민소득 3만8천 달러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마라톤 연구 학자들에 의하면 달리기를 멀리 할수록 고통은 배가되지만 인체 내에서는 진통물질이 분비돼 달리기의 고통을 줄이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러닝하이(running high:달리기 마약)'라고 하는데 우리경제의 러닝 하이 물질은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고갈되어 버렸는가. 한국이 이룩해온 경제발전은 경제학의 대표적인 연구과제이지만 아무리 계량적으로 분석해봐도 성장의 주요인이 무엇인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주도 요인이었는지. 그것은 바로 '잘 살아보자'는 국민적 합의였다.

열심히 일하겠다는 노동자정신, 일단 밀고 나가보자는 저돌적인 기업가정신, 그 둘의 합일체가 우리를 러닝 하이로 마취시키고 교과서에도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게 했다.

제 몫의 양보 없이는 집안일이고 나랏일이고 될 수가 없다.

우리는 이제 배를 산위로 끌고 가는 경제학 논리들을 버리고 한번 더 러닝 하이로 달려가야 한다.

權은 經을 누르지 마라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질서의 혼돈은 요즈음 우리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내다볼 수 없게 만든다.

아르헨티나는 일본과 같이 1974년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지만 그 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2002년에는 6천90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왜 그렇게 내리막만 걷는지는 여러 요인들로 분석되지만 그 중 하나는 정부가 늘 경제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우리경제도 늘 정치가 경제를 침해해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부침이 있었다.

요즈음 '현대'라는 대기업이 흔들리는 것도 정치와의 불가근 불가원 원칙을 잊어버린 탓일 게다.

중국 역사서에는 권력의 '權'자에는 가벼움의 뜻이 숨어 있고, 경제의 '經'자는 무거움의 뜻이 내포돼 있는데 권력이 경제를 누를 때마다 반드시 왕조가 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경제가 다시 잘 되는 길, 그것은 權의 흙탕물이 經의 우물을 넘나지 못하게 하면서, 제 몫을 양보할 줄 아는 국민적 합의의 큰 그림을 그리되 밑바탕은 굴뚝산업 기업가들의 왕성한 사업의욕으로 깔고 그 토대 위에 차세대 성장을 이끌 기술분야들을 하나씩 그려 넣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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