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다.
밤새 귀여운 요정들이 색색깔을 칠해놓은 듯 눈가는 곳 마다 황홀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토록 빨리 사라지는 걸까. 홍엽이 불타는 한쪽에선 우수수 낙엽이 지고, 마른 가랑잎들은 기침소리를 내며 바람결에 구른다.
감성이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뺨을 스치는 한 줄기 바람에도 그만 가슴이 시려지고,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핑글 돌아 당황해 하기도 한다.
"눈이 새금거리네"라거나 "이제 노안(老眼)인가 봐"그런 변명도 하면서….
그저께, 전국민적 기념일(?)이 된 '시월의 마지막 밤'엔 불황으로 조용하던 선술집들도 모처럼 북적거렸다.
라디오에선 어느 채널을 틀든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로 시작되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늦가을의 불청객 '고독'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였다.
천지에 홀로인 듯 속절없는 고독감이 밀려오는 계절이다.
대개 사람들은 고독을 멀리하고 싶어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술에 취하고, 어지럽게 연애를 하고, 마약 같은 것에 탐닉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독은 묘한 매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31세로 요절한 전혜린은 지난 6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녀의 책들이 사후 40년이 다 된 지금껏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은 매순간 미칠 듯 강렬하게 살고자 했지만 결국 삶의 패배자가 되고말았던 그녀의 짙은 우수와 고독에 감염되었기 때문은 아닐는지.
무릇 고독이란 것은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작품들과 학문업적들은 삶의 심연에서 만난 고독을 자양분으로 하여 태어났다.
철학자 니체가 "고독은 나의 고향"이라 했고 "고독한 산보 속에서 사상의 영감을 받았다"고 토로한 것이나, 괴테가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물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을 받는 것은 오직 고독 속에서다"라고 설파한 것은 고독의 플러스적 에너지를 말해준다.
허구한 날 사람들에 둘러싸여 고독할 겨를이 없다면 어떤 면에선 불행이다.
게다가 삶의 윤기와 깊이를 더하는 데도 고독은 필요하다.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 적당한 가난, 적당한 고독, 적당한 연애가 필요하다"는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이경성씨의 말은 그런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누구나 불현듯 고독해지는 계절. 다만 너무 자주, 심각할 정도로 오래 고독 속에 잠기지는 말 일이다.
전경옥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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