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도쿄도지사의 망언으로 한국과 중국이 며칠 들썩이다가 다시 잠잠해지고 있다.
얼마 지나면 화산이 분화하듯이 다시 튀어나오고, 그러면 또 며칠 들끓다가 소동도 지나갈게다.
시민이나 정부가 모두 이 문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귀담아 들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기가 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우선 우리가 확실하게 해 둘 일은 일본이 일제와 공존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일본과 일제가 다르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한 나라이지만, 일제는 침략제국주의 성향을 띤 일본제국주의의 준말이다.
즉 일제란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을 공격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고 이를 자국의 경제권으로 확보하던 시대의 일본이다.
일제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살아있다.
패전에 따라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맞은 오늘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범'이자 일제의 총수인 '천황제'를 청산하지 못한 점, 전범출신들이 주역을 이룬 집권당 '자민당'의 군림, '독도'문제와 같은 제국주의 시대산물을 고집하는 행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망언 반복이 그 증거이다.
특히 망언은 침략을 미화하고 정당화시키는 행위로서, 일본이 일제를 극복하거나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품에 안고 있고, 또 그것을 희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싫은 일이지만, 근래 10년 사이에 되풀이 된 망언을 되뇌어 보자. '한일합방은 양국의 합의에 의한 것이다'(이시하라 도쿄도지사)와 '안중근의 이토오 히로부미 저격이 합방을 일으킨 원인이다'('신편 일본사')라는 것은 병합에 대한 대표적인 망언이다.
이에 비해 침략에 대한 망언에는 '일본은 어떤 나라도 침략한 일이 없고,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다'(하시모토 류타로 전 통산성 장관), '일본이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하였지, 아시아 국가들과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침략전쟁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오쿠노 세이스케 자민당 의원), '우리가 한 것은 자존 자위의 전쟁이요, 그것은 칙령에도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반성할 것은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이다'(마유즈미 도시로 교수),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지지한 것은 일본을 신뢰하고 '대장'으로 여기기 때문이며 일본은 여기에 보답해야 한다'(가세 도시카즈 종전50주년국민위원회 위원장),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일본국을 일으켜야 한다.
'전투는 이제 시작'이다.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니시무라 신진당 의원) 등이 있다.
이런 망언은 일본 정치요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우익의 역사교과서 왜곡, 일본 정치인과 언론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과 더불어 해마다 통과의례처럼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본의 전반적인 정서를 대변해 나가거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을 미화하면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팽창과 침략에 대한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이들의 행위는 바로 '재침략의 신호탄'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일본의 우익을 추적하는 감시 체제를 갖고 있지 않다.
추적 전문가도 없고, 대응전략팀도 없다.
그러니 일본의 몇 마디 말장난에 과거가 청산된 것으로 섣불리 인정하는 어리석음을 보일 정도였다.
또 사회에는 온통 반미와 통일에만 시선을 집중시킬 뿐, 주변국가를 돌아보는 장치나 인물이 없다.
그저 불끈 솟아오르는 시민들의 반일감정에만 의존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학교교육에서조차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근현대사 교육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대구 경북지역의 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를 선택하고 있는 학교가 매우 적어 보인다.
역사교사들이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운 일이 적고, 연수과정에서도 이 분야 교육이 정상적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아직도 일본 속에 살아 있다.
되풀이되는 망언은 화산 폭발의 징후처럼 여겨진다.
'일본이 지금 곧 제국주의로 환원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국주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던 이와나미서점(출판사) 야마구치 사장의 말이 항상 귓전을 울린다
망언은 말로 뱉어내는 침략행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없다.
김희곤 안동대 교수 한국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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