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마침내 국회에 상정됐다.
정부는 파산 직전의 상황에 몰린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119조원을 지원한다는 대책을 급히 내놓았다.
그런데도 19일 서울 여의도에선 이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국회의원들은 총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비준안을 통과시킬지 말지 표계산에만 급급하다.
아직까지 FTA가 몰고올 엄청난 파괴력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칠레 FTA 비준 대세론이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칠레 FTA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 농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 농업의 경쟁력도 살리고 자유무역의 이익도 얻는 상생의 방안은 없는지 5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편집자
"농사를 포기하라는 것 아닙니까. 가뜩이나 일도 고되고 작황도 시원찮은데 칠레산 포도까지 밀려온다기에 아예 포도농사는 포기해버렸죠".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정환준(55)씨는 내년부터 포도재배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대신 그전부터 해오던 사과농사에만 전념키로 마음을 먹고있다.
시설포도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김천시 대곡동과 봉산면에서 시설포도 4천여평을 재배하는 김종일(63)씨는 "최근 시세가 좋은 탓인지 시설포도재배를 새로 시도하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걱정스럽지만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봉산면 인리에서 무가온재배(기름.비닐값 등을 절약하기위해 보일러를 가동하지 않는 재배방법)로 1천200여평에 시설포도 농사를 짓는 조세현(47)씨는 "칠레산 포도에 대응하기위해 출하시기가 조금 늦은 무가온방식을 쓰지만 정부가 수입산 포도의 출하시기 조절 등 현재 간섭에서 완전 손을 뗄 경우 더 이상 포도재배는 어렵다"며 한숨을 지었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도 "소득이 조금 낫다는 생각 때문에 최근 시설포도재배면적이 조금 늘었다"며 "그렇지만 한-칠레 FTA가 비준된다면 쏟아져 들어올 칠레산 포도수입과 출하시기가 비슷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 2월 협정에 서명했던 한-칠레 FTA의 국회비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면서 경북지역 농업인들의 심정도 절박해졌다.
한국의 과일시장 개방문제가 최대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북도 'WTO/FTA 대책팀'의 이하윤씨는 "경북지역은 전국에서 재배면적이 넓은 과일이 많다"며 "사과의 경우 전국재배면적의 64%, 복숭아 50%, 자두 75%, 포도가 43%를 차지한다"고 했다.
농림부도 "곡물류는 칠레가 수입국이고 축산물은 수입선 대체효과 등으로 피해가 없을 전망이지만 주로 과수 중심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며 "특히 시설포도는 칠레와 유통시기가 경합되고 우리나라 시설포도의 가격경쟁력이 낮아 직접피해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국과 칠레의 과일종류별 가격을 비교해보면 왜 한-칠레 FTA가 문제가 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지구 반대편 대륙에서 생산한 과일들이 국내산보다 오히려 싼 가격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현재 가격이 가장 싼 노지재배 포도의 국내가격은 ㎏당 2천535원. 반면 포도의 칠레 내수가격은 ㎏당 660원으로 여기에다 운송비와 이윤 등을 더하더라도 국내유통가능가격은 2천40원에 불과하다.
국내가격 대비 80%선이다.
복숭아의 경우도 국내가격은 ㎏당 2천65원이지만 칠레산을 수입해 유통가능한 가격은 1천829원으로 국내가격의 89% 수준에 불과하다.
경북도 'WTO/FTA 대책팀'은 10년간 품목별 피해액은 포도 직접피해 2천286억원을 비롯, 키위 347억원, 복숭아 273억원과 과일주스 가공품 등 개방에 따른 간접피해 예상액 2천954억원 등 총 5천860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119조원의 농업분야 투융자계획도 이같은 피해를 예상하고 내놓은 대책이다.
정부는 이미 우루과이라운드(UR)이후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57조원의 예산을 농촌살리기에 투자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대부분의 농업전문가들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예산만 들이붓고 실패로 끝난 것처럼 119조원의 투융자계획도 농민반발 무마를 위한 미봉책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김충실 경북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10년동안 개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UR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농업의 30%가 망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향후 10년간도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일본은 세계각국과 FTA를 추진하면서 농업분야만큼은 식량자급차원에서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한-칠레 FTA 대세론을 확산시키고 있는 정부가 농업인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신뢰성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2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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