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합천호드라이브·바람흔적 미술관

만추, 곱고 화려한 단풍도 이제 달려오는 겨울의 재촉에 못이겨 하나 둘씩 지상으로 내려앉고 비가 내리고 나더니 제법 날씨가 추워진다. 서둘러 겨울옷을 꺼내면서도 '아직은 가을인데'라며 중얼거려 본다. 마지막은 항상 아쉬운 법. 늦가을 호수에 내려앉은 계절을 보기위해 합천댐 드리이브길에 나선다. 빙어철이 시작되기도 했고 주인없는 '바람흔적 미술관'에도 들러기 위함이다.

'육지속의 바다'라 불리는 합천호는 이미 가을이 끝났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찬바람 뿐만 아니라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바꾸는 모습이 그랬다. 비가 내린 뒤 말끔히 씻긴 가지에 역광이 반사되면 앙상한 나무 가지는 마치 하얀 눈을 뒤집어 쓴 것 같다. 달리는 차창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가지들이 저마다 손을 내밀어 손짓을 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수의

열병이 드라이브길 내내 이어진다.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합천호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지에 눈이 내려있고 호수는 온통 은빛 비늘이다. 언덕배기에 차를 세우고 그저 멍하니 망부석이 된다. 마지막 잎새에 가을의 추억을 묻고 있는데 그 뒤로 펼쳐지는 호반은 아직도 가을을 아쉬워 한다. 떼지어 다니던 빙어가 비늘을 모두 털어 낸 듯 가을 햇볕에 반사된 은빛 호반은 믈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모르스 부호를 보내고 있다.

하늘이 호수에 내려앉았다. 파란 하늘은 호수에서 옥빛으로 변했다. 하늘이 파래질수록 물빛도 더 고와지는 가을 호수. 새벽이면 물안개가 밀려오고, 해질녘엔 금빛으로 물든다. 황매산, 안견산, 금성산, 소룡산.... 굽이 굽이 물길을 따라 우뚝 솟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한 구석을 돌때마다 산이 호수에 잠긴다. 산도 하늘과 같이 호수에 내려앉고 달리는 방

향에 따라 호수에 잠긴 하늘과 산의 그림자도 색깔을 달리한다. 군데군데 산자락에 일구어

놓은 다랑이 논둑이 호수와 조화를 이룬다. 합천댐 수문을 지나 황매산 군립공원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름도 예쁜 가회면에 도착해 가회다방을 끼고 우측으로 돌면 구불구불 동네길이다. 이 길을 넘어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드넓은 언덕에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는 '바람흔적 미술관'이 있다.

상봉, 중봉, 하봉 세 봉우리가 노란 꽃봉우리를 맺은 매화같다 해서 붙여진 황매산을 배경으로 한밭새터에 '바람흔적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설치작가 최영호씨가 지난 96년 경비행기로 이곳을 지나다가 황매산의 기운에 매료돼 이 산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기슭에 자신의 작업장과 미술관을 짓고 바람을 테마로 한 설치작업을 하면서 만든 곳이다.

1층 전시장과 2층 쉼터로 구성돼 있다. 대관료가 없는 전시장은 쉼터에 있는 전시일정에 기록만 하면 개인이든 단체든 누구든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데 2006년까지는 거의 신청이 끝났고 2007년도 5월, 10월은 전시신청이 되어 있는 상태다.

2층에 있는 쉼터에서 차를 한 잔 마신다. ㄷ 자로 짠 테이블 위에 커피, 인삼차, 둥글레차, 녹차 등 티백과 설탕, 프림, 커피그라인더가 놓여있고 마신 찻값을 마음 내키는데로 두고 가는 절구통이 그 가운데 놓여 있다. 구석에 싱크대와 찻잔 그리고 가스렌지위에 올려진 항아리에는 미친차가 끓고 있다. 아름다울 미(美)에 친할 친(親)자를 쓴 미친차는 미술관 관리자

가 아침에 끓여 놓고 간단다. 내용을 보니 황기, 천궁, 작약, 계피, 당기, 감초, 갈근 등이 들어 있다. 싸늘해진 손에 미친차를 한 잔 드니 온기가 그대로 전해온다.

전시장 앞뒤로 예쁘게 조성된 잔디밭위에 바람개비가 서있다. 앞마당에 22개의 바람개비가 '바람 흔적'이란 제목으로 전시돼 있고 뒷 언덕에는 '바람소리'라는 제목으로 3개의 바람개비가 서 있다. 6개의 사슬과 9개의 사슬로 기둥을 이루고 바람개비마다 바람을 받아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범종. 목탁 등이 달려 있다. 황매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느리게 혹은 빠르게 바람개비들이 돌아가고 바람개비에 연결된 범종과 목탁이 지루할 만 하면 한번씩 울린다. 앞으로 운판, 목어가 달린 바람개비가 완성되면 바람의 소리로 또 하나의 불국토가 이루어질까? 불가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중생을 위한 깨달음의 소리를 울리지만 여기서는 바람을 이용해 하루 종일, 밤새도록 중생을 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람의 소리를 잡아내는 기막힌 아이디어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바람소리 미술관에는 대개 아무도 없다. 그저 만들었던 최영호씨는 지금 몽골에서 또 다른 작업에 몰두해 있다하고 관리인으로 있는 노진수(47)씨 조차도 바람처럼 왔다가 그저 머물다 갈

뿐이란다.

취재수첩

◆바람흔적 미술관은 찾기가 쉽지 않다. 88고속도로→고령,합천IC→합천댐수문→삼거리에서 대병쪽 우회전→황매산 군립공원과 가회면사무소쪽으로 삼거리 좌회전→황매산 만남의 광장에서 좌회전, 진주방면으로 직진→삼거리에서 석재상쪽으로 우회전해서 가회면사무소를 찾는다→면사무소 가기전 가회다방을 끼고 우회전해서 동네 길 지나 계속가면 만날 수 있다.

◆본격적인 빙어철이다. 댐주위로 빙어를 파는 식당이 여럿 있지만 합천댐 수문 맞은편에 있는 '합천댐 관광농원'(사진, 055-932-0036)은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직접 재배한 무공해 농산물로 음식을 장만하고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이 몸에 배어있다. 빙어회, 무침, 튀김(2~3만원)뿐만 아니라 합천호에서 잡은 메기메운탕(2~3만원)도 좋고 반찬으로 나오는 배추찐쌈은 다른곳에서 맛볼 수 없는 별미. 이밖에 솔잎수제비(5천원), 솔잎발효차(5천원)등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