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권자들이 더 겁을 냅니다.
선거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 '술이라도 한잔 대접해드려야 되는데…' 라고 하면 주민들이 먼저 '왜 이러시냐'고 합니다.
생각보다 선거하기가 편해진 거지요" 올 총선 출마를 위해 대구에 내려온 한 신진인사의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깨끗한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돈'이라는 우리 정치 후진성의 대표적 화두가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 의식이 이처럼 완전히 바뀐 것일까. 정당간, 후보간 경쟁이 치열한 선거판에서 유권자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요구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미미한 변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구두선(口頭禪) 이상 될 것 같지 않다.
선거의 양대 축인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권자만의 변화에만 기대를 건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유권자 탓만 할건가
정치에는 분명히 상대가 존재한다.
크게는 정권을 놓고 벌이는 정당간의 경쟁에서부터 지역구를 놓고 벌이는 의원, 단체장 후보간의 경쟁 등 다양하다.
그동안 선거관행을 보면 목표를 놓고 벌이는 정당간 후보간의 경쟁에서 유권자들은 객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정당 지지 분위기를 유도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유권자들을 현혹해온 사례는 부지기수다.
여기에 공권력과 언론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구. 경북 유권자들은 이 부분의 최대 피해자로 꼽을 수 있다.
특히 YS, DJ 정부 10년은 지역 유권자들의 정치의식 자체를 왜곡, 마비시켜 버렸다.
YS 정부 때는 '우리가 남이가'로 시작한 '반YS 정서'가, DJ정부 때는 '특정지역 인사편중 시비'로 시작해 '반DJ 정서'가 지역전체를 관통했다.
유권자들을 볼모로 하는 정치권의 선전전에 건전한 정치의식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이같은 유권자 정치의식의 왜곡은 결국 갖가지 폐해로 귀결됐다.
지난 2월의 대구 지하철 참사 수습과정은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사태 수습 와중에 대구시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됐지만 같은 당 출신인 정치권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수습 책임이 있는 정치권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참사 유족과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대구의 주요 지역현안이 제자리를 맴돌고 지역경제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정치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당 일색의 선거가 계속되면서 지역의 큰 일을 위한 잘잘못을 가리는 견제장치가 제기능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성호 대구시의원은 "오직 특정당 국회의원만 국정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들을 위한 경쟁구도가 형성될 수가 있느냐"면서 "십수년간의 침체와 정체는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폐해에 대해 전적으로 정치권 탓만할 수는 없다.
유권자의 '이중성'에 기인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유권자들은 그동안 지역주의 선거 타파와 정치개혁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정치적 선전전에 매몰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지역의 한 소장정치학자는 "썩은 정치에 대해 핏대를 올린 유권자들이 과연 투표 등 직접적 정치 행태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는 자성해 볼 일"이라며 "개혁정치와 진보정치를 애써 외면한 것도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권자가 먼저 변하자
때문에 정치 주역인 유권자가 '제 무덤을 파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서도 정치적 의식의 성숙은 선결과제다.
특히 정치개혁을 위한 도도한 흐름이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현재, 대구와 경북만 소외지역으로 남을 수는 없다.
대구. 경북 유권자가 변하지 않는다면 자칫 우리만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의 섬'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지역 유권자 입장에서는 올 총선이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물론 정치권 스스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이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어렵다.
따라서 유권자가 선거현장에서 옥석을 가리는 현명한 판단력과 실천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선 유권자들의 인물본위 투표는 정치권 세대교체와 물갈이에 필수적인 요소다.
특히 특정정당 선호 경향이 뚜렷한 대구. 경북의 경우 정당간 대결에 기대를 걸 수 없는 만큼 인물대결 위주의 투표행태가 우선돼야 한다.
이게 안될 경우 정치권 물갈이는 영영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정치개혁연대측 인사도 "한나라당이 절대적 우위를 보이는 상황에서 정당간의 대결은 무의미하다"며 "한나라당 일색으로 국회의원을 뽑아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높다"고 말했다.
또 선거현장의 유권자 참여가 늘어나야 한다.
진정한 자원봉사를 통해 지지정당과 후보에 대해 직접적 지원과 성원을 보내는 풍토가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
그동안 자원봉사라는 미명하에 음성적으로 돈이 오가는 풍토가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선거를 엄단하는 선거법 규정 등이 이번 선거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종전의 부패 악순환을 끊는 의미에서도 유권자들의 건전한 의식개혁과 선거참여는 필수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지금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원봉사로 선거현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라며 "시민단체의 당선운동 등에 유권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상곤기자 lees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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