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관재수가 없어야

누구나 다 아는 '개구리' 이야기 하나.

개구리를 담은 냄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개구리는 펄쩍 뛰쳐나간다.

그러나 찬물을 붓고 천천히 가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물이 데워져도 개구리는 느리게 이뤄지는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마냥 앉아 있다.

그러다가 결국 물은 끓기 시작하고 개구리는 삶아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환경이 변하면 저마다 탈출구를 찾고,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

또 그러다 보면 좋은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느리게 일어나는 환경 변화에는 무감각한 이들이 많다.

아무 생각없이 환경 변화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면서 안주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이게 아닌데…' 싶어 주위를 살펴보면 이미 상황 끝이다.

▨고속철, 또다른 위기

2004년 초입(初入)의 대구.경북 사정은 매우 어둡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부문을 봐도 쾌청한 곳이 없다.

이는 '권력의 본산', '개발시대의 주역'이란 과거의 허상에 매달려 냄비 안의 개구리처럼 안주했던 우리의 잘못이 큰 만큼 다른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은 지금도 가뜩이나 절박한 상황인데 오는 4월에는 '경부고속철'이란 또다른 위기를 맞는다.

고속철은 국가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지만 대구.경북만 떼어놓고 본다면 결코 환영만 할 일이 아니다.

일본 센다이(仙臺)시는 도쿄에서 350km 정도 떨어져 있다.

대구-서울 거리와 큰 차이가 없다.

센다이는 한때 '미니 도쿄'라고 할 정도로 잘 나가는 도시였지만 1980년 신칸센이 개통되자 경제 전체가 도쿄권으로 흡수되면서 급속히 쇠퇴했다.

도쿄-센다이 구간의 고속철 운행 소요 시간은 1시간30분. 대구-서울은 고속철이 개통되면 이와 비슷한 1시간40분에 갈 수 있다.

대구가 센다이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물론 나고야(名古屋)처럼 신칸센이 개통되어도 위축되지 않고 발전을 지속하는 도시도 있다.

그러나 나고야는 유명한 도요타 자동차와 식기.도자기 등 확고한 산업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구는 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줄 유력한 선도기업이 없고, 섬유산업도 경쟁력을 잃었다.

이대로 간다면 대구는 나고야가 아닌 센다이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절박한 시점에서 조해녕 대구시장이 최근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해야 한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시장이 책임지겠다'고 공무원들을 다그치고, 김범일 정무부시장도 '이렇게 가면 대구의 미래는 없다'고 공직 사회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들의 공무원 개조론(改造論)이 좀 더 일찍 제기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지금 이 시점이라도 나왔으니 대구의 앞날을 위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사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있어 행정공무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구시와 구.군의 행정에 대한 지역 경제인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구에 이미 터를 잡은 경제인들도 이런 형편인데, 대구에서 새로 사업을 벌이려는 외지의 경제인들이 겪을 고충은 얼마나 크겠는가. 대구시가 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던 삼성상용차 부지의 외자유치가 지지부진해진 것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대구시의 경직된 업무자세 탓이 크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들어 기업 민원을 대하는 대구시의 자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조 시장이 애로를 겪는 기업을 직접 방문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무부서들도 종전보다 훨씬 전향적인 자세로 민원을 대하는 것 같다.

이같은 분위기가 시장 이하 일부 간부의 닦달 때문에 생겨난,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官災數 없는 한해

해마다 연초가 되면 역술인을 찾아 한해의 신수(身數)를 묻는 이들이 많다

토정비결에 많이 등장하는 신수는 관재수(官災數)이다.

'관비가 움직이니 관재가 두렵다', '관가에 들어가지 말아라. 손해가 가히 두렵다' 등등의 관재수가 점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백성들은 언제나 관(官)에 시달려온 것이 우리의 과거 역사다.

병균이나 화재, 불의의 사고처럼 관이 끼치는 민폐는 하나의 막을 수 없는 재난 같은 것이었다.

'관재'는 모양과 정도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있다.

시.분.초를 따지는 시대에 행정공무원들의 우유부단하고 무사안일한 민원 처리, 규칙과 규정만 따지며 현실 여건을 도외시하는 경직된 업무 자세는 기업인들에게는 '관재'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시.도마다 서로 앞다퉈 끌어당기는데 '관재수'가 많은 도시에 굳이 투자할 기업인은 없다.

조해녕 대구시장이 힘주어 강조하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관재수'만 없으면 쉽게 이뤄진다.

2004년은 대구.경북에 '관재수'가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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