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쌀과 보릿고개

보릿고개 밑에서/아이가 울고 있다/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할아버지가 울고 있다/아버지의 눈물, 외할머니의 흐느낌/어머니가 울고 있다/내가 울고 있다/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눈물을 생각한다//~코리아의 보릿고개는 높다/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황금찬 시인이 1965년에 쓴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는 춘궁기(春窮期)를 말한다.

지난해 추수한 양식이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수확할 때가 되지 않아 굶기를 밥먹듯 하며 보리 날때까지 기다리던 5, 6월이 보릿고개다.

이 고개를 살아서 넘어야 보리밥을 먹고 부황을 면할 수 있다.

보릿고개는 시인이 슬프게 읊조린대로 에베레스트 킬리만자로보다 더 높다.

먹을 것 없는 그 무렵이면 헐벗은 농민들은 산야를 헤매며 새로 돋아난 풀과 나무껍질-초근목피로 허기를 때워야 했다.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국가재건운동 등 경제부흥운동은 보릿고개 없애기로 불려지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 125개 국가중 국토면적 약10만㎢(남한)로 101위, 인구는 2천500만명으로 27위, 1인당 국민소득 83달러로 세계 98위였다.

요즘 아프리카 수준의 후진국이었다.

가난한 아들 딸들은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식모와 머슴으로 살만한 집에 보내졌다.

6.25전쟁 이산이 아닌 대부분의 가족찾기 사연들은 보릿고개 시대의 지긋지긋한 가난이 만든 이산이었다.

▲30~4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먹고 싶어 한이던 쌀밥이 안먹어서 남아도는 세상이 됐다.

통계청이 지난해(02년11월~03년10월)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을 표본조사한 결과 83.2㎏으로 하루 평균 소비량이 227.9g이었다.

하루에 2공기(1공기는 120~130g)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핵가족화된데다 인스턴트식품 등 대체식품 소비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잘살게 됐기 때문에 굳이 쌀밥에 원을 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40년전인 1964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20㎏이었다.

쌀 소비가 최고조에 이른 해는 1970년 1인당 136.4㎏이었다.

살만해지면서 못먹었던 쌀밥을 실컷 먹자고 했던 것인지. 그 이후 부터 다소의 부침이 있었으나 쌀소비는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급기야 1998년 99.2㎏으로 100㎏대와 작별한다.

한편 보릿고개 시대의 생명선이었던 보리쌀은 1964년 1인당 48.5㎏에서 하락세를 타면서 1983년 9.5㎏으로 10㎏대와 작별했다.

점점 쌀과 보리에 담긴 교훈과 애환마저 작별하는 것이 아닌지 아쉬운 느낌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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