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하면 누구나 추위와 앙상한 나뭇가지에 차가운 바람, 움츠렸던 몸을 연상하게 된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동인 문학상을 받은 김승옥의 대표작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암울한 60년대를 겨울로 표시했고, 김남조의 "설일(雪日)"에서 벌거벗은 겨울나무, 정처없이 떠도는 바람을 서두로 잡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는 여러 장면에 추위를 잔인하게 그려내었다
포화가 진동하는 전쟁터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듯이 겨울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얼마든지 있다.
겨울바다가 그렇고 설경이 그렇다.
설경이야말로 자연이 낳은 최고의 걸작품이다.
눈 덮인 산천을 보면 제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마음을 달리한다.
눈 없는 겨울은 삭막하기만 하다.
환상적인 하얀 눈이 내리면 누구나 마음은 포근하다.
눈이오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얼룩진 더러운 세상도 하얀 눈은 아름답고 깨끗하게 바꾸어 놓는다.
눈은 세상을 확 바꿔놓을 힘을 가진 것이다.
요즈음 대구에는 눈 보기가 쉽지 않다.
옛날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할 정도로 하얀 눈이 자주 오더니만 지금은 멀리 달아나 버린 눈이 그립다.
눈은 순결하기 때문에 하얀빛을 띠고 있다.
우리문학에 하얀 눈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많다.
김주영의 "홍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으로 시작해서 눈으로 끝이 났다.
외국작가로는 우리나라에서 고영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빼놓을 수 없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2년 간 공들여 써온 중편소설 "설국"은 그의 대표작이었고 마침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72세를 일기로 가스 자살을 함으로써 헤밍웨이만큼이나 세계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그의 작품 첫머리에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
이 한 문장으로 "설국"을 농축해 놓았다.
이렇게 결론부터 토해낸 소설은 드물다.
4계절이 함께 있는 일본은 출발지점이 봄이 될 수도 있고 여름이 될 수도 있다.
산악지역의 긴 터널을 지나자 일본에서 눈이 제일 많이 내린다는 북쪽 니카다현 온천지역의 새로운 세계가 바꾸어진 영화장면과 같이 눈의 나라가 새롭게 펼쳐진 것이다.
어릴 적 일이었다.
자다가 소피를 보기 위해서 방문을 열었을 때 밤사이 마당에 하얗게 쏟아진 눈이 달빛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고 달빛은 눈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 듯했다'는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문학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랑이기도 하다.
"이게 영하의 날씨란 말인가?" 하고 시무라는 처마 끝에 매달린 예쁜 고드름을 바라보면서 여관 안내원과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눈빛이 집들의 낮은 지붕을 한층 낮게 보이게 해서 마을은 괴괴하게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과연 무엇을 만져도 차가운 느낌이 다르군".
"작년엔 영하 이십 몇 돈가 하는 게 가장 추운 때였죠".
"눈은?"
"글쎄요, 보통 일 여덟 자지만 많이 쌓일 땐 열 두어 자 될 때도 있죠".
영하 이십 몇 도의 날씨, 고드름, 일 여덟 자의 눈, 짧은 문장에 겨울은 다 들어가 있다.
차가운 눈바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추운 가운데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따뜻하고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저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세 살 때 어머니마저 여의고, 조부모 밑에 자랐으나 7세 때 조모, 15세 때 조부, 남은 누나마저 타계하였다.
성장기의 환경이 외롭고 고독한 현실을 가슴 깊이 안고, 부드러움 속에 비정하고 차가움을 눈으로 비화시켜 "설국"을 낳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설국"은 주인공 시마무라를 비롯해서 등장인물 네 사람이 인간의 숙명적 슬픈 사랑과 남녀의 섬세한 심리의 흐름을 그린 서정소설이다.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눈 내린 고장은 환상적인 분위기와 청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느 작가나 성장기의 환경은 문학의 토대가 된다.
고독과 죽음에 집착한 그는 죽음을 미화하고 자연과 허무를 노래했다
그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싸늘하고 때로는 섬뜩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어 작가 자체가 겨울이다.
송일호(대구소설가협회장) 그림=장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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