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망명길에 오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50) 아이티 대통령은 뒤발리에 부자의 장기독재 체제에 항거한 저명한
성직자 출신으로 1990년 아이티 200년 역사상 첫 민주적 선거에서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한 인물이다.
민중의 대변인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1953년생으로, 가톨릭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해방신학의 강력한 지지자로 19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0년 12월 빈민
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6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몇달 지나지 않아
군부 주도의 쿠데타로 이듬해인 1991년 9월 권력에서 축출돼 첫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미군 2만명 파병으로 아이티에서 민간정부가 수립된 이후 1994년 10월15일
아이티로 돌아와 잔여 임기를 마쳤다. 아이티 헌법상 1996년 2월 대선에서 연이은
대선출마가 금지된 그는 200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했으나 재차 임기를 마치지 못하
고 대통령직 사임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는 운명을 맞았다.
첫 집권 시절 그는 정치권 분열을 봉합하려 했으나 반대파들은 빈민들을 부추겨
국가를 불안과 폭력의 상태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했다. 2001년 7월 쿠데타 기도도
군부 출신 인사들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은 그해 12월 '친위 쿠데타'
기도가 있었으며 이는 아리스티드 정부의 억압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아리스티드가 과거와 같이 재차 복귀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아리스티드는 미국이 "그의 계속적인 통
치능력"에 의문을 표시하며 이 같은 위기는 대부분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인 29일 결국 사임했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그가 1980년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극단적으로 갈렸다.
1986년 거리의 어린이들을 위한 수용소를 세운 그를 열성적으로 따르는 지지자
들은 아리스티드를 메시아적 인물로 칭송하며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 아이티 민중을
이끌 지도자로 평가했지만, 그의 반대자들은 위험한 독재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난했다.
그의 급진적 정치행보로 1988년 교단의 배척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1994년 아리
스티드는 공식적으로 성직자 신분을 버렸으며, 이후 결혼했다.
첫 대통령 재직 기간에 상당한 부를 축적한 아리스티드는 재선하기 전 자신의
친한 동료였던 렌 프르발 전(前) 대통령 시절에도 수도 포르토프랭스 교외 고급저택
에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가 재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이미 아이티 정
치는 극도로 혼미해져 있었다.
아리스티드는 무자비한 뒤발리에 독재체제가 종식을 고하던 1986년 이미 빈민가
에서 종교활동을 벌이며 급진적 성직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세계 최초의 흑인국이자
중남미 최초의 독립국인 아이티에서는 종신 대통령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가 1957년
이래 계속됐으나 1986년 쿠데타로 종식됐고, 이후 1988년 1월 31년만에 민정 복귀가
이뤄졌으며 올해 1월1일 독립 200주년을 맞았다.
아리스티드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야권은 2000년 5월과 7월 실시된 총선에
서 아리스티드가 이끄는 라발라스 가족당(FL)이 부정선거를 일삼았다며 3년 넘게 대
통령 하야와 함께 총선 재실시를 주장해왔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2006년 2월까지로 돼있는 임기를 지키겠다고 맞섰으나 반
정부 무장세력이 아이티 제2의 도시인 카프아이시앵 등 영토의 절반을 장악하고 수
도 공격을 경고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사임 압력 속에서 결국 권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야당이 선거를 거부하고 폭탄테러가 발생하는 등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가
운데 2000년 실시된 대선에서 아리스티드는 91.8%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공
식집계상 돼있으나, 야권은 이 결과를 한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국
제 참관인단도 우려를 표명했다.
반대세력은 아리스티드가 민주적 제도와 구조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해왔다.정치
적 분열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의 집권 기간 아이티를 미주 대륙의 최빈국 대열에 다
시 올려놓는 결과만을 낳았다.
명민한 정치 행동가로 상황변화 대처 능력이 능숙한 것으로 알려진 아리스티드
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섣불리 전망을 못하고 있다.
야권연합체 민주주의 강령이 아리스티드 사임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강경한 자세
를 유지한 데는 아리스티드가 야권과의 합의사항을 지킬 능력이 없었거나 그럴 의사
가 없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적어도 야권의 입장에서 아리스티드의 사임은
남미 빈국들 중의 하나인 아이티를 새롭게 출발시킬 기회를 맞은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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