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대구의 제2차 지역산업진흥계획(전체예산 4천203억원)이 5년간의 일정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밀라노프로젝트로 불리며, 제직과 염색 위주의 섬유산업 일변도였던 1차 지역산업진흥계획과는 달리 이번 계획은 '메카트로닉스' '모바일' '나노부품' '전통생물소재' '한방산업' 등 신산업이 지역전략산업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기술 기반의 첨단산업도시 '대구'로 거듭나기 위한 긴 항해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대구시와 대학간, 또 각 대학의 교수들 서로와 전문가들 사이에 서로 다른 관점의 주장들이 쏟아져 나와 출범도 하기전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의 미래를 열어갈 대형 프로젝트에 이견이 많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제2차 대구지역산업진흥계획의 논점을 종합점검하고,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해 본다.
◇새로운 재단법인 또 필요한가
대구시는 2차 지역전략산업 중 신산업 분야를 담당한 '대구신기술산업원'을 별도의 재단법인으로 설립하고, 전략산업의 평가와 기획을 맡을 '전략산업기획단'도 별도의 독립기구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대구신기술산업원이 재단법인으로 설립될 경우 대구테크노파크,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대구기계부품연구원,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KIST:예정), 한국섬유개발연구원, 한국염색기술연구소, 한국섬유기계연구소, 한국패션센터 등 유사한 목적을 위한 재단법인이 또 하나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다.
대구시의 이같은 계획은 다른 시,도의 추세나 세계적 경향과도 동떨어졌다는 지적이다.
'관' 중심의 개발경제 시대를 벗어나 21세기 지식경제에 접어든 지금은 '기업'과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 주도적인 역할하고, 행정기관은 이들을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혁신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적용은 국내에서도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산업진흥재단을 설립, 정보통신(IT)과 바이오(BT)는 물론 인쇄와 패션 등 전통산업의 육성까지 총괄하도록 하고 있다.
경남의 미래산업재단도 기계(메카노21)와 생명공학, 정보통신을 모두 관장하고 있으며, 성남과 대전도 이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
테크노파크를 설립한 지역은 테크노파크를 지역산업혁신의 중추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은 충남테크노파크의 산하에 전략산업기획단을 두고, 그 밑에 신기술산업원을 설치해 신산업과 전통산업이 총체적 관점에서 육성될 수 있도록 조직을 갖추기로 했고, 경북도 경북테크노파크 사업단장이 전략산업기획단장을 겸임하도록 했다.
해외의 사례도 비슷하다.
독일 도르트문트시는 1980년대 말 유럽최대의 철강기계회사인 티센크루프가 철강부문에서 철수하면서 7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도시를 첨단산업도시로 되살리기 위해 시와 지역기업, 대학 등이 참여하는 '제3섹터' 기관인 '도르트문트 프로젝트(DP)'를 설립한 뒤 산업 육성과 해외기업 유치 등에 관한 전권을 위임해 운영하고 있다.
유럽전문가인 김두일 박사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전략과 전문성이 필요한 21세기 산업정책을 비전문가인데다 1, 2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행정관료들이 맡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제3섹터'형 전문기관을 전략적으로 육성,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센터의 입지, 과연 합당한가
'메카트로닉스' '모바일' '나노' '전통생물소재' '한방산업' 등의 각 센터를 특정대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지역기업 가까이에 위치하도록 한다는 것이 산업자원부의 기본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성서3차 산업단지내에 각 센터들을 모으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도 메카트로닉스는 대구기계부품연구원에 통합운영하고, 한방산업지원센터는 대구한의대 부속한방병원내에 세우기로 했다.
성서공단에 위치한 대구기계부품연구원은 산자부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만, 한방산업지원센터는 예외의 경우가 발생한 셈이다.
이 때문에 대구시는 한방산업지원센터에 대한 시비 지원을 않기로 했다.
그런데 센터입지와 관련, 또다른 논란이 되는 것은 모바일단말상용화센터다.
모바일센터가 핵심 지원대상으로 하는 모바일기업은 대구칠곡과 구미 사이에 위치해 있는 40여 개 중견업체(전체 모바일 관련 기업은 300여 개). 대구의 관련 중심대학으로는 경북대와 영진전문대를 꼽을 수 있다.
따라서 모바일센터가 특정대학을 벗어나 기업 가까이에 간다는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이 밀집해 있는 '대구칠곡지역'이 최적지인 셈이다.
또 대구칠곡에 모바일센터가 들어서야만 향후 삼성전자와 연계해 국가적 전략산업인 모바일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또다른 지원기관들과의 원활한 유기적 협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구시는 칠곡지역에서 센터부지 2천800여 평을 구하기 어렵고, 성서공단에도 모바일 관련기업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성서공단 입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역 전문가들은 "시의 폐쇄적 사고 때문에 지역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대구칠곡과 왜관 인동 라인을 검토하면 충분한 센터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경운대 첨단모바일산업지원센터와의 협력도 더욱 원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운영, 최선의 방안은
시의 방침 중 가장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 중 또 하나가 센터운영방식이다.
각 센터장을 '외부인사'로 영입하고, 모든 소속 직원을 1년 단위 계약직 연봉제로 채용한다는 것. 얼핏보면 센터의 독립성 보장하고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센터의 발전을 가로막는 행정편의주의라는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지역산업진흥계획에 따라 설치되는 각 센터는 사실상 독립적인 R&D(연구.개발) 기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연구인력 없이 장비오퍼레이터와 보조인력으로만 운영되거나, 기껏해야 석.박사 인력이 10명 미만이고, 가장 규모가 큰 대구기계부품연구원도 전체직원(행정포함)이 37명에 불과하다.
각 센터들이 지역산업진흥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핵심역량을 지닌 지역대학 연구개발 인력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각 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2년 이상 연구하고 고민하며, 예산확보에 노력한 지역대학 교수진을 배제한 채 외부인사를 센터장으로 앉혔을 때, 센터와 지역대학간 원활한 협력체제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센터에서 발주된 연구용역을 지역대학에서 맡아 한다고 해도 연구성과를 보고하기만 하면 될뿐, 제대로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센터에 대한 대학의 '애정'이 떨어지는 탓이다.
이 때문에 시 공무원이 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대구기계부품연구원도 운영 전반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연구개발 못하는 연구원'이란 오명을 벗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1년 단위로 센터의 전직원을 재계약하겠다는 발상도 연구기관의 성격을 모르는 관료적 발상의 전형이라는 비판이다.
평가를 위한 초단기적 성과에 급급하고, 자체 연구동력을 갖지못한 센터들이 어떻게 사업이 완료된 5년뒤에 지역기업의 사랑을 받는 자립기반을 굳힐 수 있겠는가. 또 불안전한 신분으로 센터를 이끌어가야 하는 센터장 등의 수준과 열정이 현저히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첨단도시 대구, 성공의 길
최근 조해녕 대구시장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해 숨가쁘게 뛰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런데도 아직 대구시는 행정편의주의와 공무원 권한늘리기에 급급하다는 혹독한 평가를 벗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 공무원을 대할 때 느끼는 지독한 관료주의와 전문가를 무시하는 태도는 고향에 대한 환멸을 가져옵니다.
서울시나 경남도 등 다른 지역 공무원들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침체된 대구를 되살리는데 힘을 보태겠다며 의욕을 보이던 지역의 전문가들이 하나 둘 대구시에 등을 돌리고 있다.
차라리 대기업이나 다른 지역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명예도 살리고 실속이 있다는 것이다.
2차 지역산업진흥계획에 대한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부터 추진될 '바이오' '나노' '메카트로닉스' '모바일' 센터들은 지역의 각 산업을 포괄하는 사업이 아니라 산자부의 한 프로젝트일 뿐이다.
이 사업들은 과기부, 정통부, 산자부, 교육부 등의 다른 관련 프로젝트와 유기적 관계속에 지역산업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시의 역할은 개별 사업에 일일이 개입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와 전문조직들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지역사회 총체적 관점에서 전체적 방향이 제대로 가기 위해 지원하고 조정하는 일이다.
공무원들이 시민들과 전문가, 기업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때, 진정 '기업하기 좋은 도시, 살기좋은 도시 대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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