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사이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면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험악한 사태요 싸움의 시작이다.
"아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에요?"라는 한 마디다.
많은 경우 이 말이 나오면 거기서 대화가 끝난다.
아니면 서로 삿대질하다가 주먹다짐으로 연결되는 수도 있다.
따지는 것이 어떤 종류의 행위이기에 한국인의 정서에는 이렇게 거부 반응을 불러오는 것일까.
따지는 행위를 좀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볼 수는 없을까. 따진다는 것은 '하나 하나 따져본다'는, 확인해본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이런 말에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는 것은, 한국인들한테 꼬리표처럼 달려있는 '대충 대충','적당히' 일 처리하는 습관에 대한 도전이나 꾸지람처럼 여겨져서 나오는 알레르기적 반응은 혹시 아닐까.
필자는 살고 있는 아파트 부근의 헬스클럽에 등록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특히 아침 시간에 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이었다.
그 이유는 아침 6시부터 틀어놓는 음악 때문이었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 있는 모든 스피커에서 높은 볼륨으로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침에 운동을 하며 땀을 흘려 독소를 빼내고,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어 좋은 하루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침에 헬스클럽에 가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데 밤 11시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디스코에서 몸을 비트는 데 적합한 음악을 아침에 들어야 하나.
하루는 아침 8시쯤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뛰며 땀을 흘리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바로 내 옆에 있는 머신에 올라오더니 머리 위에 있는 스피커의 볼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스피커들에서 큰 볼륨의 음악이 나오고 있는 데도. 아니, 이미 바로 그 밑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나한테 볼륨을 올려도 좋으냐고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화가 나서 "저한테는 볼륨이 너무 큰데요"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그 시간에 운동하는 몇 사람들한테 물어보았다.
몇 사람은 뭘 그런 것 갖고 귀찮게 물어보느냐는 태도였고, 다른 몇 사람은 자기들도 그 시간에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싶은데 음악이 너무 크다고 동의하였다.
그러나 단체 항의와 문제 제기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문제 제기를 반드시 적대적인 행위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옆에 있는 이웃에게 동료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손을 내밀어 대화를 요청하는 우호적인 행위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제 제기자를 혼란 야기자로 단정해 왕따시키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인 듯하다.
아직도 권위주의적이고 반(反) 대화적인 정서가 한국 사회의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게 올바른 것일까. "나는 이렇게 보았는데…". 이런 제스처들은 가장 인간적으로 타인에게 하는 손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우리 인간은 누구나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그 생각을 바로 그때 옆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한다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된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는 타인이 처한 입장에 관심을 갖고 최소한 "왜 그래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하고 미소 한번 지어주고 지나가면, 그것이 위안이 되고 그 미소를 짓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케어(care)의 행위를 몸으로 실천한 것이 아닌가.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철학자 두 명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하이데거는 그래서 인간끼리의 '케어링 어텐션(caring attention)'을 강조하고, 불교에서는 자비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것이 친절이라는 말로 나와도 좋다.
조그만 친절과 자상한 케어의 태도, 그것이 우리가 다른 같은 인간에게서 필요로 하는 전부이다.
따지는 것도 이 케어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케어링 어텐션'을 서로에게 주지 못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하나? 모든 인간은 따로 따로 떨어지게(disconnected) 된다.
이런 인간사회가 결국 1999년 미국의 중등학교에서 발생한 13, 14세 소년들의 총기난사로 이어진 것이다.
서로가 '케어링 어텐션'을 주고 받을 권리와 의무를 저버린 상태에서는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인간사회는 물론 환경 파괴로 이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뭔가 이질적인 반(反)구성원이 되어 버린 것일까.
홍가이(경성대.해외석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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