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국학진흥원 유물 수탁사업 '결실'

안동의 어느 유물 소장자는 밤에는 목판을 껴안고 잠을 자고, 낮에는 이를 집안 구석에 숨겨 놓았다고 한다.

이처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고서(古書), 목판(木板) 등 각종 유물 때문에 외출조차 안심하고 못했던 소장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화재로 소중한 목판을 소실하거나, 전문 절도범들에게 유물을 털린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최근 소장자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은 후손이 지킨다'는 생각을 바꾸고 있다.

2001년 10월 안동에 한국국학진흥원이 들어선 뒤 경북 북부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국학진흥원은 특히 목판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임노직 국학연구원은 "30만장쯤 되는 국내 목판 중 절반인 15만장이 경북에, 그 중에도 10만장이 안동에 있다"고 밝혔다.

국학진흥원은 앞으로 세계 최대규모인 목판 10만장을 수집,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목판이 1만8천점에 불과한 점으로 미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국학진흥원은 2001년부터 민간소장 국학자료 수탁사업을 펼친 결과 불과 2년 만에 목판 3만1천149점 등 10만970점을 수집했다.

특히 이 중에는 정조때 영의정을 지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선생의 번암문집 목판 등 외부 노출을 꺼렸던 희귀 목판을 비롯한 보물 446점과 도지정문화재 97점 등 543점의 귀중한 문화재도 포함 돼 있다.

국학진흥원 심우영(沈宇永) 원장의 문중 방문 및 초청간담회도 소장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번암문집 목판은 안동 봉정사에서 만들어졌다.

사찰에서 보관하던 이 목판은 일제 때 봉정사앞 안동 김씨 문중의 태창제사에서, 이후 풍산읍 소산리 청원루에 보관 중이었으나 지난 1970년 서울의 후손이 찾아갔다.

국학진흥원은 이 후손을 찾아 "원래 안동에서 만들어졌고 안동에 있던 것 아니냐"고 설득해 수장고에서 관리하고 있다.

목판 제작에 좋은 나무는 가래나무 대추나무 박달나무 자작나무 후박나무 돌배나무 산벗나무 등으로 결이 좋고 오래 견뎌 최고로 쳤다.

목판은 바닷물 또는 웅덩이에 2, 3년씩 담가두는 연판(鍊板)과정을 거쳐 나무결을 삭히고 진을 뺀 뒤 찌고, 살충을 한 다음 그늘에 말려 갈라지거나 뒤틀리지 않도록 했다.

적절한 크기로 자른 목판 양쪽 머리에는 마구리를 붙였다.

이어 판서본(板書本)이 마련되면 목판에 한 장씩 뒤집어 붙인 뒤 반대 글자체와 그림 등을 그대로 새겨 각본(刻本)을 끝냈다.

마구리는 운반의 용이함과 각자(刻字)의 맞닿음 방지, 통풍을 위한 것으로 팔만대장경판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교정을 거쳐 목판이 완성되면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먹색이 진한 송연묵(松煙墨.숯먹)을 사용해 책을 찍었다.

이 때 먹물을 목판 위에 칠하는 먹솔은 볏짚의 상단 이삭부분을 모아 만든 작은 빗자루를 사용해 인쇄가 선명하도록 했다.

국학진흥원 수장고에 켜켜이 들어차 있는 목판마다 그 옛날 각수들이 판각 작업에 쏟은 땀방울과 열정이 진하게 배어 있다.

안동.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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