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남편의 월급봉투를 챙기되 재산은 남편 이름으로 등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부가 월급을 각자 관리하거나 부동산을 부부 공동으로 등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재산에 관해 동등한 권리를 갖자는 '부부재산계약제'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조사한 결과도 부부재산계약제가 '필요하다'는 응답(여성89.8%, 남성 55.8%)이 많았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부부간 경제권을 동등하게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 우리부부는 '독립채산제'=조경옥(결혼정보회사 선우 대구지사장)씨 부부는 각자의 월급을 따로 관리하고 있다.
각자의 직장이 확실한 만큼 어느 쪽도 각자 월급 관리에 대해 '왜?'라는 물음표를 달지 않았다.
육아비, 관리비, 새 가구 구입비 등 생활비는 50%씩 부담한다.
"가장 큰 장점은 금전문제로 싸우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취미생활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친정이나 시댁에 '깜짝선물'도 건넬 수 있고요". 이 부부는 상대의 수입이 어느 정도이고, 지출 규모가 얼마인지 대충 짐작할 뿐 '이래라 저래라' 참견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독립채산제'는 자칫 무절제한 지출을 부를 수도 있다.
"무절제한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동관리가 좋습니다.
독립채산제는 우선 편하지만 목돈 마련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결혼정보회사 지사장인 조씨는 예비 신혼부부들과 상담할 때도 '독립채산제'를 권하지만 자신들에게 어느 쪽이 적절한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빼놓지 않는다.
결혼 3년된 이 부부는 '독립채산제'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경우다.
결혼 전 각자 주택부금통장을 만들었고, 얼마 전 처음으로 재산을 공개했을 때 두 사람 모두 놀랐다고 한다.
양쪽의 예금액이 서로의 기대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부모님 도움 없이 아파트를 분양 받는데 성공했죠. 결혼 5년 안에 내집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은 각자 상대 모르게 저축한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다.
조경옥 지사장은 스스로 "대구.경북 최고 커플 매니저라고 자부한다"며 '독립채산제'나 '부부재산 공동등기' 등 남녀가 동등한 경제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 스스로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우리부부는 '재산 공동등기'=양미원(가명.전업주부)씨는 얼마 전 내집을 마련하고 남편과 공동 등기했다.
그가 아파트 공동등기를 원했을 때 남편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 남편 이름으로 등기하는 데 왜 유별나게 구느냐는 것이었다.
양씨가 계속 고집을 피우자 남편은 "내가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인데 어째서 공동명의로 등기해야 하느냐"며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엄밀히 말해 남편 혼자 벌어서 장만한 집은 아닙니다.
결혼 전 제가 직장 다니며 번 돈을 결혼 당시 전셋값에 포함시켰고, 결혼 후에도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아이들 학원비나 교재비로 썼거든요".
양씨는 이외에도 내집 마련에 자신의 공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육아, 남편 뒷바라지, 시부모님 봉양, 청소 빨래 등 집관리, 시댁의 대소사 처리 등을 거의 도맡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뒷바라지 없이 남편의 힘만으로 오늘만큼 재산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 아닌가요? '네것 내것' 가르는 것은 야박해 보이지만 만일의 사태를 생각해야죠". 그는 요즘 두 집 건너 한 집이 이혼한 집이라며, 쌍방이 재산권을 공평하게 행사할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더군요.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했기 때문에 '공동등기'를 원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 둔 전업주부의 경우 이혼을 생각하면 끔찍하고 막막하거든요". 양씨는 요즘처럼 이혼율이 높은 세상에서는 전업주부의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공동등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적 현황=현행 우리 민법은 부부별산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혼전부터 보유한 재산과 결혼 중 상속.증여 받은 재산은 각자의 고유재산으로 본다.
그러나 소유가 불분명한 가재도구 등은 공유재산으로 해석한다.
결혼중 부부가 함께 취득했지만 한쪽 배우자(주로 남편)의 명의로 돼있는 재산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처분해도 막을 수 없다.
재산분할청구권을 행사해도 전업주부는 30%정도만 인정받는다.
여성부는 이와 관련 '부부별산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부부가 실질적으로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누리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한편 예비 부부들 중에는 결혼전부터 미리 '부부재산계약제'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결혼 후의 재산에 관해 공평한 권리를 갖자는 것으로 △5:5 재산공유 ▷부부가 합의하지 않은 보증은 효력이 없도록 하는 '보증부담 사전동의' △중요재산 매입.매각시 사전동의 등의 조항을 넣은 '부부재산 약정서' 등이 주 내용이다.
부부가 직접 작성해 등기소에 등기신청하면 된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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