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못보는 시각 장애인들의 '소리 길잡이'가 되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주부 황춘식(39.대구 달성군 논공)씨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대구 중구 남산동의 점자도서관으로 간다.
황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녹음 도서'를 만들고, 무료로 배달도 해주는 봉사모임 '소리 지팡이'의 회원. 점자도서관의 녹음실에서 책을 읽어 카세트 테이프(녹음 도서)에 담는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다른 봉사단체에서 어린이 논술지도를 한 경험을 살려 동화.고전 등 어린이용 책을 주로 맡는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울 시각 장애아들을 생각하면 집에서 점자도서관까지 2시간 동안이나 오가는 일도 오히려 즐겁다는 것.
'소리 지팡이'는 지난 96년 대구 점자 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점자를 익히지 못한 후천성 시각장애인은 물론 점자가 익숙한 시각장애인들도 보다 편하게 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녹음 도서를 전달해주는 배달 봉사팀, 책을 읽어 녹음하는 녹음 봉사팀, 점자를 묵자(일반글자)로 번역하거나 묵자를 워드 작업해 점자 출력기로 출력하는 점역 봉사팀, 행사 때마다 수고를 마다 않는 노력 봉사팀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회원이 5명에서 300여명으로 늘었고, 도서관에 보관된 각종 녹음 도서도 7천권을 넘어섰다.
'소리 지팡이' 조엽(42) 단장은 "점자는 같은 자음이라도 초성.종성에 따라 표기가 다르고 약자까지 있어 복잡하다"면서 "이 때문에 1년 동안 점자를 익혀도 무난히 책을 읽기가 쉽지않다"고 했다.
녹음 도서는 책을 읽는 속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00쪽 분량이 대략 카세트 테이프 7, 8개 분량. 소설의 인기가 높고 침술, 지압, 안마 등 한방 의학도서도 시각장애인들에게 베스트 셀러다.
"지루하지 않도록 최대한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게 읽어야 합니다". 황씨는 "동화책 한 권을 처음 녹음할 때 한 달이나 걸렸다"면서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잘못 읽었거나 재미없다고 생각되어 카세트 테이프를 되감아 녹음하는 일이 다반사. 때로는 투정부리는 아이가 됐다가 인자한 할머니로, 꾀돌이 토끼가 됐다가 무서운 호랑이로 바꾸는 목소리 연기도 수준급이라야 한다.
녹음 전에 책을 몇 번이나 읽어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사투리나 억양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렇게 녹음된 도서는 20명의 배달 봉사자들이 시각 장애인들의 집으로 배달해 준다.
조 단장은 "흰 지팡이의 날(10월 15일), 점자의 날(11월4일), 장애인 체육대회 등 여러 행사 때도 회원들의 활약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장애우들이 녹음도서를 통해 상상의 나래를 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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