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봉화 산불 때 헬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겠어?" "요즘은 산림이 무성해 산불이 났다하면 대형인데 접근하기도 힘들고 나설 사람도 없잖아" "역시 산불 잡는 데는 헬기가 제일이지"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짱' 이야".
산불예찰에 나선 공무원들 몇명이 서로 질세라 입이 마르도록 쏟아 놓는 산불진화 헬기 예찬이다.
하지만 정작 헬기조종사들의 활약상이나 노고를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이 듣는다면 무척 섭섭해 할 일이다.
산림항공관리소 안동지소. 경북지역 산불진화를 도맡는 곳이다.
내친 걸음으로 불쑥 찾아가 운항실에 대기 중인 헬기 조종사들을 만났다.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준 이기동(李基東.53)운항실장은 산불진화 출동 때의 감회를 묻자 "울창한 숲이 화염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내 가슴도 숯덩이가 된다" 며 "산불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올 봄 경북지역에는 유독 산불이 잦다.
날씨가 워낙 건조했던 터라 지난해에 비해 벌써 3배 가깝게 발생했고 녹음이 깔리기 전까지 또 얼마나 많은 산불이 날지 모를 일.
그래서인지 이곳 8명의 조종사들은 올해 들어서만 50여회, 또 최근 봉화와 포항, 칠곡지역 대형 산불현장에 연이어 출동하느라 파김치가 됐지만 누구도 휴식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때마침 단비가 내려 한나절은 쉴 법도 했지만 다음 출동준비차 정비 중인 헬기를 점검해야 한다며 대화를 재촉했다.
" 미안하지만 한가롭게 무용담을 나눌 시간이 없다" 는 것이다.
분명 몸에 밴 책임의식과 베테랑조종사들의 프로다운 일면이었다.
육군항공대에서 비행시간 2천시간 이상을 기록하고 이곳으로 옮겨 온 이들. 이기동 운항실장은 비행시간 6천시간 경력의 소유자다.
이현중(李玄中.51) 조종사는 "헬기 이륙 순간 그날의 기상상태와 기류변화를 바로 읽고 산불진화작전에 제대로 대처해 아무리 큰 산불이라도 잠재우고야마는 솜씨는 그런 경력에서 발휘된다"고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산불진화비행은 언제나 사투다.
연료와 물을 가득 담은 육중한 헬기로 발화지점에 정확하게 물을 투하하기 위해 급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자체가 목숨을 건 곡예비행인 것이다.
산 계곡에서 맞는 예상치못한 돌풍과 곳곳에 도사린 고압선과 삭도 등 무수한 장애물 때문에 급박한 위기상황에 빠질 때가 부지기수다.
지난 3월 10일 발생한 속초지역 대형산불 현장에서였다.
김철훈(金哲薰.49) 조종사는 밤에는 진화가 어렵기 때문에 일몰 직전 반드시 큰 불길을 잡을 욕심으로 초대형헬기(S-64)에 물을 최대한 싣고 현장에 접근했다가 와류에 휘말려 자칫 불기둥 속으로 추락할 뻔했다.
"의욕이 앞선 무리한 비행이었고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문득 3년전 안동시 길안면 산림청 헬기추락사고가 떠올랐다.
산불진화중 산림항공관리소 양산지소 소속 조종사 3명이 순직한 참사였다.
무심코 취재담을 얘기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형제같던 동료들이었다" 며 "이제 아픈 기억을 잊을 만도 한데…" 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직이라고 생각하기에 몸을 사리지 않는다" 는 이 조종사는 "동료들이 혼신을 다하고 있는 만큼 관련 공무원이나 주민들도 산불예방은 물론 진화 때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고 당부한다.
산불대비 비상근무 기간은 봄과 늦가을에 걸쳐 약 6개월. 눈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면 항상 대기 아니면 출동이다.
경북지역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전국 산불 현장에 투입된다.
본청 상황실의 지휘아래 전국에 산재한 지소 헬기가 인근 지역 산불진화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1997년 고성, 삼척, 울진지구 산불때는 꼬박 10일간 쉬지않고 지원 출동하기도 했다" 는 김 조종사는 "요즘도 강원도 태백, 강릉 등지를 수시로 넘나든다" 고 말했다.
격무 못지않게 힘든 것은 모두 가정을 수도권에 둔 탓에 떨어져 사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주말부부도 못합니다". '나홀로' 직원숙소 생활이 몸에 익을 만도 하지만 왠지 허전하고 그럴 때면 이내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한다는 것이다.
산불취약지역인 경북지역에서 수년간 예상밖으로 산불피해가 적었던 것은 이들의 이같은 활약과 책임의식이 밑거름이 된 때문이다.
산림항공관리소 안동지소는 지난 2월 전국 산불방지 우수기관 포상을 받았다.
이 실장은 "이런 성과는 함께 출동하는 공중진화대원들의 희생적인 활동과 사무부서 동료들의 치밀한 업무지원이 삼위일체가 돼 이룰 수 있었다" 며 "푸른 산을 지키는데 더욱 정열을 쏟겠다" 고 다짐했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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