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입방정'

유대인들에게 전해오는 '지혜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는 혀에 얽힌 일화들이 많다.

하루는 한 상인이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팔겠다'고 거리에서 소리쳤다.

순식간에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돈을 많이 줄 테니 팔라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넘쳤다.

그러자 그 상인은 '인생을 참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자기 혀를 조심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말에 관한 글이나 속담은 동서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병(病)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禍)는 입으로 나온다' '혀가 미끄러지는 것보다 발이 미끄러지는 편이 낫다'는 말조심을 강조한 속담들이다.

▲세상에는 말로써 망신을 사고, 화근을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구나 지도층 인사들의 '입방정'은 파장이 상대적으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지난 총선 때 당시 모리 총리가 부동층을 겨냥해 '그냥 잠이나 자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젊은층이 궐기해 엄청난 표를 잃었다.

지난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 대통령의 잦은 말실수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다.

▲천수이볜 총통의 '입방정'이 대만 첩보망을 노출해 중국 내 그 조직이 와해되는 등 말썽을 빚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11월 말 천 총통은 선거 유세 때 중국이 대만을 향해 겨누고 있는 미사일 수(496기)를 공개하고, 기지 이름까지 밝혔기 때문이다.

중국 군부에서도 아는 사람이 제한된 이 내용에 대해 발언한 뒤 중국은 간첩 색출에 나서 대만 고정간첩 19명 등 첩보원 43명을 체포했다.

▲문제는 그 뿐 아니다.

어제는 또 중국의 군사기밀을 대만 정보기관에 넘겨 온 혐의로 공군 장성급 4명이 포함된 간첩단이 검거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때문에 대만으로서는 거물급 첩보망이 노출돼버린 셈이다.

이에 대만 야권은 '천 총통이 국민 투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익을 희생시켰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최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된 인질 문제를 두고 '입 방정'을 떨었다가 여론의 화살을 맞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를 사온다'는 말이 있듯이, 말을 잘하면 '가벼운 입'과는 달리 득을 불러들이게 마련이다.

심지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던가. 요즘 세상에는 지나칠 정도로 말로써 말이 많은 '말의 성찬'이 넘쳐난다.

TV정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말 잘하는 정치인들이 그 무대를 사로잡기도 한다.

그러나 말을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모두 혀를 조심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속담에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을 하고 못 줍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태수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