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한창 무르익는 오월이다.
이 땅에는 다시 희망과 환희의 계절이 찾아 왔다.
초봄, 앙상하던 겨울 나뭇가지에 돋은 연두빛 아기 잎에는 녹색 물이 짙게 들었다.
산과 들에는 온갖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누가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화사한 이 계절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이 무엇이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방긋 웃는 아기 얼굴'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운 봄꽃들과 신록의 아름다움을 제쳐두고 하필이면 '아기의 웃음'을 떠올리는 것은, 그들의 천진함과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에 내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또한 한 점 티 없이 밝게 웃는 아기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꿈의 꽃망울이기 때문이다.
3월 마지막 월요일 아침이었다.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회 때 나는 어린이들에게 봄꽃 이야기를 했다.
휴일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한 봄나들이 길에서 보았을 민들레꽃, 냉이꽃, 제비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 산수유꽃 등 산야를 곱게 물들이고 있는 봄꽃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짤막한 시 한 편을 들려주었다.
'모두 모두 꽃이야//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웃을 때 향기 나는/꽃이야//그 중에서도 가장/예쁘고 향기 좋은 꽃은/바로,//너지!//(신형건의 시 〈모두모두 꽃이야〉 전문)'
시 읽기를 끝낸 나는 얼른 어린이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린이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시의 표현과 같이 여러분들은 모두모두 꽃입니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어린이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내 학교 운동장은 1천400여 송이의 꽃이 활짝 핀 꽃밭이 되었다.
이렇듯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인정해 주면 하늘을 날듯이 좋아하는 그들에게서 나는 진정한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지금 문밖을 내다보면, 금세 우리의 눈 속으로 빨려드는 신록이 아름답다.
짙은 녹색 정원을 바라보는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마음껏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외롭게 병마와 싸우고 있을 이 땅의 어린 생명들을 생각한다.
현재 대구에는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학생이 모두 217명이나 된다고 한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는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여 생명이 차츰 사그라들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귀한 생명을 잃어야만 하는 그들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들의 선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그들도 모두모두 이 땅에서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어린 꽃들이다.
또한 그들도 누군가에게 분명 사랑 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귀한 생명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병마와의 싸움으로 지친 삶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 이웃의 참사랑을 느끼고 있을까. 진정 사랑 받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귀한 존재라면, 따뜻한 이웃이 함께 있음이 그들에게 큰 기쁨과 용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4월 26일, 대구광역시교육청 주최로 '사랑의 손잡기 운동'의 일환인 '난치병 학생 돕기'모금 행사의 발대식이 시민회관에서 있었다.
'작은 사랑으로 난치병 학생에게 새 생명을!'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우리말에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정성들이 모여 천하보다도 귀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값지고 보람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 각급 학교에서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자발적인 모금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난치병 학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사랑의 편지 보내기 운동'도 전개한다고 한다.
어찌 이 일을 우리 어린 학생들에게만 맡게 둘 것인가. 많은 시민들이 이 선한 일에 선뜻 나서서 뜻을 같이 한다면, 끝내 시들어서 떨어지고야 말 어린 꽃송이들이 다시 꿈을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며칠 후면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날 제정의 참뜻을 한번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값비싼 물질로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 아니라, 응달진 곳의 이웃들에게도 가뭄에 단비 같은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삶을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의 미래인 이 땅의 어린 꽃들이 어린이날 제정의 참뜻대로 '바르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땅의 모든 어린 꽃들에게 꿈과 사랑이 풍성한 오월이 되었으면 한다.
권영세(아동문학가.대구신암초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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