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상인터뷰-'피의 숙청'주도 고려 광종

고려 4대 임금 광종(949-975)이 '피의 숙청' 작업을 벌이고 있다.

즉위 7년 되던 해부터 계속된 숙청 작업으로 살아남은 호족은 100명 안팎이다.

그나마 이들 대부분도 감옥에 갇혀 있거나 쫓기는 신세여서 상당수가 더 희생될 전망이다.

호족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비안검법, 과거제, 백관 공복 제정 등 강력한 호족 억압정책을 펴고 있는 광종을 만났다.

-원래 노비가 아니었던 자를 해방시킨다고 하지만, 노비안검법에 대해 귀족들의 반발이 심한 것 같습니다.

△노비를 해방시키지 않으면 지방호족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제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들의 영토와 사병을 유지하는 힘이 바로 노비입니다.

귀족들이 보유한 노비 수를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려야 귀족을 억누를 수 있습니다.

-국내 인재들도 많은 데 하필 후주 사람인 쌍기를 측근에 두고 노비안검법이나 과거제 등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쌍기는 후주에서 이미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없어 요직에 올려놓아도 왕권을 위협할 염려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왕께서 혼인정책을 펴는 바람에 얼마나 많은 호족들이 요직을 독차지하고 나라를 어지럽혔습니까. 그런 일은 다시 없어야지요.

-취재차 궁궐에 들어오면서 보니 또 감옥을 증축 중이시던데, 왕권강화도 좋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것 아닌지요.

△나는 고려의 4대 임금입니다.

태조 이래 2대 혜종, 3대 정종이 모두 저의 형제입니다.

왕은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이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귀족의 힘이 세고, 왕권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왕권이 약하니 왕위 쟁탈전이 끝없이 발생합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지금 벌이는 '피의 숙청'은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이번 개혁으로 왕위쟁탈전은 이제 매듭이 지어질 것입니다.

-모든 귀족을 다 죽이겠다는 말씀인가요.

△세간의 소문은 나를 폭군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왕권을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을 꺾은 후에는 과거제를 시행할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시행중인 제도인데, 과거제를 시행하면 자연스럽게 개국공신이나 외척이 도태되고 인재가 등용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건국초기부터 이처럼 왕위 쟁탈전이 심각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아시다시피 아버지인 태조왕의 후삼국 통일은 지방호족들의 동참으로 가능했습니다.

말하자면 후삼국 통일은 호족 연합적인 성격이 짙었지요. 태조께서는 결혼 정책을 통해 호족을 달래려고 했습니다.

여섯 명의 왕비와 23명의 후궁을 두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호족들은 너도나도 딸을 주고 요직을 독차지했습니다.

이러니 왕위 쟁탈전이 심각해질 수밖에요.

-어쨌거나 이번 숙청작업으로 호족과 개국공신 중 40여명을 제외하면 모두 처형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숙청작업으로 부자간에 서로 고발하고,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는 등 민심히 흉흉합니다.

수습하실 방책은 있으신지요.

△부처님께 비는 일이 남았지요. 그러지 않아도 은진 관촉사 미륵불 공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죽은 이의 원한을 달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석불로 지을 생각입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역사신문은 역사적 사건 당시 오늘날과 같은 신문이 있었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 것인가 생각해보는 지면입니다.

※ 참고자료: 국립 중앙도서관.국가지식정보통합검색 시스템.한국역사연구회.역사신문.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이야기 한국사(이현희). 인물/난/미술/서책으로 읽는 한국사(정유민).인물세계사(서양편).인물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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