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클릭-이순신 열풍

400여년 전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둔 이순신이 '부활'하고 있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TV드라마, 영화가 잇따라 제작되고 그의 삶을 다룬 소설 '칼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여기에 한 지방자치단체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가 하면 이순신을 소재로 한 유머, 게임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성웅(聖雄) 이미지가 아닌 인간적 고뇌에 찬 인물로 묘사된 새로운 이순신 상(像)이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이순신 드라마.영화 '붐'

KBS는 100부작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8월부터 방송한다.

이순신의 어린 시절부터 최후를 맞게 되는 노량해전까지를 그리게 되는 이 드라마는 소설 '칼의 노래'와 김탁환씨의 소설 '불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순신(김명민) 유성룡(이재룡) 선조(조민기) 등 주요배역을 확정하고 촬영에 돌입했다.

드라마 제작진은 '성웅'이란 존재에 앞서 '인간' 이순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는 계획이다.

KBS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승리를 이끌었던 이순신이야말로 21세기 새로운 지도자 상"이라며 "이제 이순신과 임진왜란을 다시 보며 국론과 외교적인 역량을 결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차원에서 드라마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또 영화제작사 싸이더스는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천군'을 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군대'라는 의미의 '천군'은 현대 서울에서 조선시대로 간 군인들이 젊은 시절 방황하던 이순신을 만나 그가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의 판타지.코믹 영화로 박중훈이 이순신으로 출연한다.

최근에는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이전하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광화문광장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이순신 동상을 이전할 방침이라고 발표했으나 반대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있다.

또 에스디엔터넷은 해전 전략 시뮬레이션 온라인 게임 '네이비필드'에 이순신과 관련된 이벤트를 마련, 게이머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통영시는 기존 한산대첩축제를 새롭게 개편하고 기념공원조성, 거북선 건조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나의 퇴근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퇴근' 유머도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칼의 노래' 인기

이순신 열풍의 진원지 역할을 한 것은 작가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였다.

'난중일기'를 토대로 이순신이 백의종군할 무렵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2년여의 이야기를 그려낸 '칼의 노래'가 출간된 것은 2001년. 그동안에는 '눈밝은' 독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다 정치권에서 이 책이 화제가 되면서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지난 3월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읽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하루 200부에 머물던 이 책의 주문량은 7천여부로 뛰었고, 지금까지 25만부가 팔렸다.

출판사측은 "그동안에는 문학 애호가와 학생, 군 관계자 등이 주요 독자였으나 탄핵안 가결 이후 정.관계와 기업 인사 등 장년층 남성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정치적 환경 변화로 소설 장르의 책 판매가 급증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밝혔다.

△ '인간 이순신'에 공감

전현수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순신은 기존의 성웅, 완벽한 인간의 이미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군은 물론 조정과 임금 등 사방의 적들에게 둘러싸인 이순신은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합니다.

또 부하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등 인간적인 측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간 이순신'에 사람들이 더욱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 전 교수는 "노 대통령을 비롯해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칼의 노래'에 빠져드는 것은 이순신이 처한 상황에 그들의 처지를 오버랩하는 측면도 엿보인다"며 "이순신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을 찾고 국면을 돌파하려는 지배집단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냉전시대 종결, 경제성장 등 국내.외적 변화에 따라 나라를 구한 영웅의 이미지에 묶여 있던 이순신의 이미지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한 인간으로 이순신을 바라보는 것은 21세기적 해석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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