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5)드라마 '피아노'

"애들한테 잘 할 게요".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아비의 지독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억관의 가정은 '콩가루 집안'. 현실은 모양조차 맞지 않는 조각 맞추기.

형편없는 3류 깡패였던 아비는 엄마와 약속한 대로 '온 몸이 뿌사지도록' 정을 쏟지만 수아와 경호는 친어머니를 앗아간 의붓아버지를 인정하기도 힘들고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도 힘들다.

아비는 고단했던 삶을 경호의 목숨과 맞바꾼 후에야 아버지로 인정받는다.

자식을 대신해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는 아버지. 고단했던 사랑의 결말 레테. 슬프고도 아름다운 추억의 해독제 레테.

지난 2002년 SBS에서 방송된 드라마 '피아노'는 한 아비의 지독한 자식 사랑을 그린다.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과장된 부성애가 주된 틀. 드라마 '피아노는 '철도원', '러브레터' 등 현실 공간에 환상의 휴머니즘을 끼워 넣은 일본인 작가 아사다 지로의 판타지 방정식을 그대로 따른다.

생전 단 한번도 자식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저 사랑을 쏟아 붓기 바쁜 아비. 늦은 밤 부둣가에서 당신이 싫다며, 내 아비가 아니라며 떠나는 경호의 뒤에서 "사랑한데이~ 내는 니를 진짜 사랑한데이~". 주책없이 손수건을 흔들며 "알러뷰". 억관의 지독스러웠던 내리 사랑은 아들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990년대 초까지 TV 드라마 속 아버지 상(像)은 가부장적 권위가 강조됐다.

시대의 변화를 헤아리지 못하고 낡은 권위에 매달리는 엄부(嚴父)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 대발이 아버지(MBC '사랑이 뭐길래.1992년)가 극명한 예다.

그러나 사회가 탈권위의 바람속에 능력위주로 재편되고, 전통적인 상하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대체되면서 드라마 속 아버지의 모습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근엄하고 과묵한 아버지가 아니라 친구같은 '젊은'아버지가 각광 받게 된 것. 무능한 아버지는 연민섞인 존경의 대상이 될지언정 낡은 권위를 고집하는 아버지는 '왕따'당하고 마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두 집 살림을 하면서도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는 뻔뻔스러움을 보이다간 자식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게 되고(KBS '꽃보다 아름다워' 2004년)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당신은 집에서 뭐하는 사람이냐"는 아내의 말에 움찔하는 소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KBS '애정의 조건' 2004년).

'피아노'에서 억관은 '친구'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극단에 이른 경우다.

억관에게서 아버지다운 권위나 가부장으로서의 부담은 없다.

대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메워주는 아버지를 넘어 무조건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랑의 표현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스스럼 없이 사랑을 얘기하는 억관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돋는 가시쯤으로 생각하는'갱상도 싸나이'들에겐 더욱 그렇다.

아버지란 그저 묵묵히 자식들이 가는 길에 발판이 돼주는 존재인 것이다.

어느새 커버린 자식의 모습 뒤엔 힘없이 쪼그라든 아버지의 그림자. 왜 사랑한다는 말이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굳이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처럼 스멀거리는 그 말을 꺼내기 힘들었을 뿐. 하지만 요즘같이 은유보다는 직유가, 느림보다는 스피드가 각광받는 시대에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백번 용돈을 쥐어주는 것보다 훨씬 약발이 잘 받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오늘 저녁 아이들의 뒤에서 주책없이 손 흔들며 "알러뷰~".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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