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의 등쌀에 못 이겨 주인은 유일한 재산인 암퇘지를 팔기로 했다.
흥정이 오간다.
새끼도 잘 낳느냐고 묻는다.
물론 잘 낳는다는 대답. 어떻게 잘 낳느냐? 동네에 잔치가 벌어지면 암놈을 낳고 회갑연이 벌어지면 수놈을 낳고 한 술 더 떠서 제삿날에는 염소까지 낳는다고 했다.
암퇘지가 팔릴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눈 딱 감고 늘어놓는 거짓말.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거짓말. 뺄 수 없는 현대인들의 필수품일까. 사람이 궁하면 속인다는 순자의 말은 정답이지만 매우 순진하다.
밥먹듯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종의 패스트푸드. 마르틴 루터는 한가지 거짓말을 참말인 것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 가지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고 그 숫자까지 못 박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과연 그만큼 필요할까. 물론 더 많이 필요해 산더미처럼 거짓말을 연속으로 해대야 하는 일도 있을 게다.
그저 아찔할 뿐이다.
주초에 해인사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우리의 삶이 언제, 어디서, 어떤 올가미에 걸려 들게될지 알 수 없다며 웃었다.
그래서 스님은 사람들이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고 거짓말을 계속하게 되고 말이 아닌 소리들을 늘어놓기 마련이라고 했다.
말이 아닌 소리. 참일 수 없는 소리. 그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정치가 말이 아니라고들 한다.
경제도 말이 아니라고 아우성이다.
국제관계는 또 어떤가. 말이 아니라는 소리를 딱 듣기 좋다.
매듭 없는 이라크 파병문제와 미군 감축. 부시 그 이후의 무책임한 발상. 북한과 중국.독도까지 힐끔거리는 일본. 동해표기 마저 심기를 건드린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지금 이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개혁주체와 그 언저리에 걱정을 던지는 이유가 갈수록 분명해 진다.
어딘가 부족하고 하는 일들이 허술해 보이고 말투가 말이 아닌 듯하다는 야유 말이다.
해인사에서 만난 스님은 이럴수록 조급한 마음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 성찰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도 신중히 나의 것처럼 경청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에게 입이 하나요 귀가 둘인 것은 말하기 보다 듣기를 배로 하라는 탈무드의 경귀를 새겨 볼 만하다고 했다.
원효스님의 유명한 뱀의 비유도 들려주었다.
뱀이 비록 꾸불꾸불 앞으로만 가지만 곧은 대나무 관속으로 가게 되면 스스로 곧 바로 나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자기 성찰에 관한 소설을 권하고 싶다.
최인훈의 '화두'. 지난 94년 펴내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던 소설이다.
작가는 이미 문제작 '광장'으로 대단한 역량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었지만 20여 년의 침묵을 깨고 이 작품을 내 놓자 반응은 대단할 수밖에. 두 해 전에는 이 작품 속의 한자어를 토박이말로 바꾸고 문장 일부를 수정하는 등 보완작업을 해 다시 펴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고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할 만큼 항상 완벽성을 추구하는 자세가 작품에도 그대로 배어있다.
요즘 툭하면 화두라는 용어를 막 쓰는 일들이 많다.
웬만히 부닥치는 일에는 화두라는 용어로 바람막이하려 든다.
이 작품의 제목 덕이 아닌가 싶다.
정치판에도 표현키 어렵고 난감한 일에는 그냥 화두라고 얼버무리는 일들을 볼 때면 얄미운 느낌이 든다.
화두란 불가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 하는 문제로 흔히 이야기되고 선종에서는 고칙(古則)이나 공안(公案)이라고도 한다.
그건 그렇고 최인훈은 이 작품에서 치열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목소리. 주인공 '나'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성찰의 소리. 때로는 깊은 계곡에서 때로는 얕은 계곡에서 쉼 없이 지르는 소리. 어쩌면 그 소리들은 작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르고 싶었던 함성이요 살면서 지르지 못했던 소리들인지도 모른다.
일제에서 80년대의 시간 사이를 처연히 돌아보며 그것이 어찌 작가만의 세월이었을까.
자신이 한창 시절이라고 여기는 세대들은 꼭 읽어 볼만한 소설이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데 무척 도움되는 사고들이 그대로 젖어 있는 글들이 많다.
누구든 그 시점까지 살아 온 그 시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읽어보면 새롭게 그 시점이 그어져 작가의 시점과 한 번 대비해 보는 것도 자기 성찰을 위해서는 톡톡한 몫이 되지 않을까.
곧 부처님 탄신일,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기려 등불을 켠다.
등불을 위한 등불도 있을 것이고 마음을 위한 등불도 있을 것이고 큰 등도 있을 것이고 작은 등도 있을 것이다.
어쩌랴. 그 수많은 등불 중에서 자기 성찰을 위한 등불만큼 밝고 환한 등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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