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한장의 사진

사진의 특징이자 본질 중에 하나가 현실성이다.

이것은 다른 예술과 달리 사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찍는 행위임을 뜻한다.

다른 모든 예술은 사람이 만들어 낸다.

음악도 문학도 무용도 모두 사람이 비록 손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만들어 낸다.

사진은 무한히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에 잡아 이쪽 현실을 저쪽의 의식으로 바꿔 한 평면 위에 고착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한순간을 고착시킨 영상은 그 사진의 앞뒤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해 내야만 한다.

그래서 사진작가는 만드는 솜씨보다 현실을 파악하는 눈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사진을 발견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기교적 혹은 기계적 솜씨가 없더라도 여행 때는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가끔 내 눈에 비치는 그런 의미 있는 순간을 발견하기를 즐긴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들 중에 내가 가장 오랫동안 귀중히 여겨온 사진 한 장이 있다.

그것은 십 수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사진이다.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기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가을 여행을 가서 천제연 폭포 앞 벤치에 앉아 폭포의 떨어지는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내가 뒤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폭포를 보고 있는 인물의 뒷모습을 찍어서 인물 사진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란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그래서 이 사진은 다른 아버님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는 달리 사진을 통해 아버님의 죽음을 인지하는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고 오히려 평화로운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님을 생각할 때 자주 이 사진을 꺼내 보게된다.

그러다 얼마 전 나는 이 사진에서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 속에 담겨져 있는 아버님의 사물에 대한 말년의 인식이었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아버님의 생에 대한 시선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저 폭포수가 떨어져 흘러가는 것같이 자신의 삶도 이제 거의 다 흘러흘러 바다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는 시선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죽음이 서서히 가까워 오고 있음을 보고 그 죽음을 오히려 강하게 응시하며 껴안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아버님은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계시는 듯했다.

'저 부서져 내리는 물보라 같이 나의 살결이 부서져 흩어지며 바람결 같이 흩날리고, 온갖 것들에 스며드는 공기가 되어, 숲의 초록과 바다의 무지개, 동물의 울음소리와 모든 웃음이 되어 결코 없어지지 않는 모든 것의 살이 되는 것이다.

'

그 다음 또 하나는 정현종님의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라는 시를 읽으며 여태껏 내가 이 사진을 풍경사진으로 보아왔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님이 저 폭포와 어울려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자아의 죽음이다.

즉 자아의 관념을 파기한다면 죽음을 화해롭게 맞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 자아의 죽음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사물과의 만남이고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풍경이 된다는 것은 그가 주변의 것들과 조화하며 공간의 사소한 한 부분이 되는 순간을 말한다.

즉 인간이 순수하고 객관적인 대상으로 물러나 앉을 때, 그 사람이 행복하거나 혹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때 그 풍경이 된 사람은 한 송이 꽃에 다름 아니다.

이 사진 속에서 아버님은 하나의 풍경으로 앉아 있는 것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이제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고, 아버님의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빛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사진은 하나의 추억을 되새기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죽음을 극복한 아버님의 나에 대한 사랑의 전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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