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톨트 브레히트는 강성 공산주의자였다.
그의 정치적인 희곡 중에서도 가장 래디컬하게 정치적인 연극은 아마도 '도살장의 성 요한나'일 것이다.
19세기 말 시카고에서는 동유럽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이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면, 자본가들인 도살장 주인들은 업체 문을 아예 닫아 버리거나 파업자들을 해고하였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결국은 숙소를 잃고 홈리스가 되어 먹을 것도 없이 길거리에 나와 헤매게 되었다.
구세군 요한나는 이들을 위해 길가에 텐트를 쳐 추운 시카고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잠을 잘 수 있게 하고,뜨거운 국을 끓여 먹게 해주었다.
이런 자선 사업은 어떤 기준으로도 선행으로 간주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요한나는 자기가 하는 자선 사업이 불쌍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었나를 생각하게 되며,그녀는 자신의 자선 사업이 선행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위한 투쟁에 오히려 걸림돌 노릇이나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자각에 도달한다.
이것은 위대한 정치적인 자각인 것이다.
또,선과 악, 예스나 노우의 양자 택일의 단순 논리는 좀 더 깊은 심층부의 진리나 현실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현 한국 사회에서 팽배한 아메바적인 정치. 현실 인식이 바로 그런 단순 논리의 횡포에 의한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최근에 아주 훌륭한 한국인이 쓴 저서가 나왔다.
장하준 지음의 '선진국은 왜 글로벌스탠다드를 강요할까(KICKING AWAY THE LADDER)'이다.
이 책에서 장 박사는 "지금 선진국이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서 어떤 정책과 제도를 썼는지를 잘 살펴보고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장 박사는 지금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권하는 각종 정책은 과거 자신들이 썼던 정책과는 대립되는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치열한 경제역사학적인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사실 장 박사가 풍부한 역사적인 사실과 통계 자료 등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이미 이마뉴엘 왈러슈타인이라는 좌파 정치경제역사학자의 세계체제론에서 나오는 해석이다.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는 중앙의 헤게모니 세력(국가)은 계속 중심위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할 것이므로 어떤 주변 국가에서의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장하준 박사의 테제, 즉 글로벌스탠다드의 강요는 중심 헤게모니 세력을 이루고 있는 선진국들이 주변부에서의 도전,즉 한국 같은 신흥공업국의 도전을 차단하려는 수단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왈러슈타인의 이론적 틀이나 장 박사의 연구 결과를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끌어 나가면, 미국이 중심인 헤게모니 세력에 대한 도전은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가장 강력하게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그 많은 나라들 중에서 주변부에서 조금이라도 중심부에 가깝게 이동한 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박 정권의 공헌을 박 정권이 아닌 좀 더 민주적인 체제로 가면서도 그 정도의 발전은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증명은 못 하지만, 역사적인 선례로 볼 때, 그런 대안적인 발전의 가능성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반미 성향의 인사나 단체는 역설적으로 박정희의 세계체제 속에서의 중심 헤게모니 세력에 대한 도전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왈러슈타인의 과격한 좌파적인 이론틀이나 장하준 박사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주변부 국가에서의 '민주화 먼저 그리고 경제 발전'이라는 등식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 준다.
즉, 지금 소위 말하는 중심부의 선진국들이 한국에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주변으로부터의 도전에 대한 차단이 듯이, 비 민주적인 주변 국가에 민주국가를 설립하는 것을 도와 주겠다는 구실로 각종의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들의 중심국가로서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음모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이라크의 예만 보라. 현재 북한의 핵무기 소유에 대해서, 자주 독립적인 태도로 좋게 보는 한국의 자칭 좌파 지식인들은 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이 미국의 강압에 항거하며 독자적인 핵프로그램, 추진을 백안시한 바로 그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한번 물어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충분히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으니, 한번쯤 이런 논리적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홍가이 동서대·해외석학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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