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세 좋은 돼지값 빛좋은 개살구"

1천400여평 부지에 500평 규모의 초 현대식 시설을 갖춘 군위군 의흥면의 한 양돈장.

돼지값이 4개월째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이 농장의 모돈사.비육사.젖먹이 방은 텅텅 비어있다.

각종 작업도구들도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분위기로 봐서 이 농장주인은 당분간 양돈업을 재개할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돼지 시세가 하루가 멀다하고 초강세가 유지되고 있어 양돈업이 호황을 누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양돈업을 시작한 지 15년째인 이 모(52.의흥면)씨는 최근 양돈장에 있던 2천마리의 돼지를 한꺼번에 몽땅 팔아버린 후 훌훌 손을 털었다.

"2년전부터 신종 바이러스성 질병인 P.M.W.S(젖 뗀 새끼돼지의 만성전신소모성증후군)로 생후 50~60일된 새끼돼지의 폐사율이 높아 심한 경우에는 50%가 폐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출하물량이 없으니 시세가 올라가면 오히려 화만 치솟지요".

이씨는 가을 바람이 불면 돼지가격이 떨어질 게 뻔한데 사료값 인상과 신종 바이러스 질병 등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상황속에서 더 이상 버틴다는 것은 파멸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

주위에서 폐업을 서두르고 있는 양돈농가는 부지기수지만 농장을 정리해 빚을 갚고나면 당장 거리로 쫓겨날 형편인 양돈농가가 대부분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의흥지역은 비교적 기술수준도 높고 현대식 시설을 갖춘 일정 규모 이상의 양돈농가들이 대부분이라 타 지역에 비해 다소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1천여마리 미만의 소규모 양돈장의 어려움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영세양돈농가의 경우 시설이 오래돼 분뇨처리 비용이 많고 새로운 질병에 대응할 능력이 부족한 데다 과중한 부채규모도 생산성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양돈회 한 회원은 "영세양돈농가의 경우 부채 규모는 모돈 1마리당 약 300만원 정도로 모돈 200마리 정도면 부채 규모도 6억원 정도"라며 "생산성이 떨어져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양돈을 포기하려고 수차례 망설이고 있지만 빚 때문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끌고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20년째 양돈업을 하고 있는 한 모(51.군위군)씨는 2년전 화재로 1천400여마리의 돼지를 한순간에 잃고 전재산을 날렸다.

한씨는 잿더미를 걷어낸 자리에 280여평의 돈사를 짓고 새끼돼지 400여마리를 입식해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한 끝에 1년만에 800마리 규모의 농장으로 키웠다.

그러나 요즘같은 돼지값 폭등에도 전혀 즐겁지않다.

수지타산을 따져보니 지난해보다 오히려 못하기 때문이다.

매달 450여마리의 새끼돼지를 입식하고 있지만 팔 것은 200여마리에 밑돈다.

새끼돼지의 경우 비싼 고급사료를 2개월간 집중적으로 먹이는데 폐사율이 높아 생산원가가 높아진 데다 올들어 3차례나 인상된 사료값 부담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축산폐수처리 비용, 예방백신 구입비도 만만치않다.

한씨는 "요즘같은 최고의 시세에도 매달 200여마리의 돼지를 출하해 사료값을 제하고 나면 1천여만원이 남지만 인건비와 환경처리비 등 제반경비를 제하면 남는 것은 200만~300여만원이 고작"이라며 "올 가을 가격이 하락하면 끝장"이라고 걱정했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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