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시간을 담은 그릇

개화기 즈음에 안배미(內栗里)에 살던 열일곱 소년은 부모 몰래 고향을 떠났다.

한양으로 떠난 그는 상투를 잘라 고향에 부치는 것으로 그의 신학문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의 아버지의 충격은 아들이 판사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순간에도 "영감인지, 곶감인지…이놈!"하고 회초리를 들고 분노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효자상을 받은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세월은 이 마을도 비켜 가지 않아 이 고요한 양반 마을에 역이 서고, 기차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외지에서 변호사로 살아가는 아들에게서 손자를 얻기 위해, 부모를 봉양하던 며느리를 데리고 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나귀와 하인을 앞세우고 역으로 오던 아버지는 중도에서 이웃 마을 친척을 만나 주막에서 그만 시간을 지체해 버렸다.

그리고 역에 당도하여 떠나는 기차를 보고는 하인에게 호령하셨다.

"저놈 맞돈 줄테니 서라고 해라!" 하고.

이 이야기를 나는 시댁에 가던 어떤 날, 약목 역을 지나면서 남편에게 들었다.

그 순간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시할아버님, 시증조 할아버님께서 마치 마법의 숨결을 받은 듯 생생하게 살아나시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체수가 좀 작으셨을 듯한 그 어른들이 느리게 뒷짐을 지고서 역 앞을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제사에서는 한 번도 뵙지 못한 모습들이었다.

우리 시골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약목 역은 그래서 나에게 한 시대를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특별한 지표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약목 역을 지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을 진정 육화(肉化)된 존재로 느낄 수 있었다.

종언(終焉)을 고하려는 한 시대를 그보다 더, 상처 없이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명의 시간에, 그 어둑선함을 밤이 오려 할 때의 어둠과 혼동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밤을 준비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가올 아침을 대비하기도 하는 것이 아닌지. 무엇이 옳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렇지만 한 시대를 넘기고, 바라보며 사는 우리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며 그 시간과 함께 하고 싶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던 한 소읍에 기차가 들어오고 그것은 그 굉음만큼이나 커다랗게 마을을 흔들어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그 중심에 이제는 고즈넉해진 역이 있고, 그 역은 인근의 사람들이 누적시킨 삶의 무게를 안고 고요히 낡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창틀에 앉은 먼지처럼 시간을 안고 존재하는 그것은 입김으로 훅- 불어버리는 순간 시간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숨을 고르고 그 먼지들을 사랑하고 응시해야 한다.

한 순간의 무심한 한숨이 고이 앉은 시간들을 무참하게 날려 버리지 않도록.

하지만 나는 기어이 그 '사라짐'에 부닥치고 말았다.

시간의 켜들을 그대로 지붕에 이고 소박하게, 고즈넉히 서 있던 목조 역은 대대적인 증축 후에 인조 대리석으로 번들번들하게 치장한 채 버티고 있었다.

(이건 차라리 공해다.

) 그리고는 그 옛 어른들은 더 이상 역 어디에서도 뵐 수가 없었다.

이제 그분들은 당신들께서 다니시던 그 역을 찾지 못하실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시간의 향내를 맡으며, 종횡으로 누적된 삶의 흔적을 상상하고 교감할 자유를 박탈당해도 좋다는 건지 나는 통 알 수가 없다.

우리들이 오래된 거리에서 서성일 때 그곳에서 살고 죽은 사람들의 지혜가 마치 먼 곳에서 날아온 홀씨인 양 우리 속으로 들어와 싹을 틔우고, 이 시대를 살아갈 정신으로 꽃 피는 것이 아닐까? 마치 가구를 바꾸듯 우리 삶의 역사를 폐기 처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소박한 한 마을에 담긴 시간은 소박하고 풋풋한 시골 역에도 나누어 담겼을 것이다.

획일화, 기능화되기만 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을 담은, 작고 아름다운 시골역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그것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새 역을 지어도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옛 어른들의 시간에 이 시대의 시간을 더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준다면, 그들은 그 시간의 골목 어귀마다에서 우리를 만나지 않을까? 조미향 경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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