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어공주' VS '스파이더맨2' 주말 흥행맞장

"안녕하세요. 사람이 되고자 올해로 167년을 기다린 인어공주입니다.

안데르센 아빠는 유언장에 사람이 되고싶으면 먼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라고 했어요". "저도 같은 말을 들었어요. 참! 저는 항상 답답한 마스크를 써야하는 스파이더맨이에요. 우연히 거미에 물리는 바람에 지구를 지키는 일을 떠 안았지만 이런 몰골로는 사랑하는 여자친구 앞에 설 용기가 안나요".

6월의 마지막날 극장가에는 인간이 되고 싶은 인어와 거미의 대결이 벌어진다.

누구의 소원이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까.

◇인어공주

충무로에는 흥행이 힘들기 때문에 제작 자체를 꺼리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블록버스터, 판타지, 애니메이션 등은 국내 영화제작자들에게 홀대받는 대표적 장르. 하지만 올 들어 이런 공식들이 하나 둘씩 깨지고 있는 모습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제시하고, 2004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한 '오세암'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희망을 줬다면, 영화 '인어공주'(박흥식 감독)는 판타지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느낌이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르내리는 이 영화는 한마디로 현실의 세파에 휩쓸려 인생의 쓴맛을 알아버린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 바치는 잔잔한 송가다.

스무 살쯤 된 나영(전도연)은 억척스러운 엄마(고두심)와 몸이 아프지만 아프다는 말 한마디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빠(김봉근)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 데서나 침 뱉고 욕하는 무식하고 그악스러운데다 아버지의 면전에서 무능하다고 악다구니하는 엄마가 지긋지긋하다.

또 아빠의 잘 못선 보증 때문에 전재산을 다 날려 대학 진학마저 포기한 나영은 아빠에 대한 감정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 사람들은 부모 될 자격이 없어". 나영의 이 대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부모를 이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꿈이야기 같은 판타지 멜로를 표방한 이 영화가 어째서 얼룩덜룩 생활의 때가 찌든 현실의 한복판만 비출까. 이런 생각이 들 무렵 영화는 서서히 표정을 바꾼다.

그악스럽던 엄마와 무능한 아빠의 모습은 없다.

대신 젊은 시절의 갈래머리 수줍은 해녀 엄마(전도연)와 멋지고 착한 우편배달부 아빠(박해일)가 존재할 뿐. 영화는 드디어 서정적이고 순정한 판타지 공간으로 헤엄쳐 나간다.

'인어공주'의 배경인 섬마을은 칙칙하고 어두운 도시, 늘 겨울인 현실과 달리 초록빛이 찬연한 여름만이 계속된다.

젊은 시절 엄마와 아빠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통해 딸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내용은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오히려 엄마의 첫사랑이라는 묵은 재료일 뿐. 하지만 이 영화는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일상의 이야기를 맛있는 반찬으로 요리하는 손맛을 선보인 박흥식 감독이 연출했기에 뭔가 다르다.

게다가 1인2역을 매끈하게 소화한 전도연과 박해일이라는 재능 있는 배우와 고두심의 실감나는 연기는 영화의 순도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특히 아역 배우 강동우의 역할은 주연급 이상의 비중이다.

어디서 이런 배우를 찾았을까. 3개월 동안 전라도 지역을 샅샅이 뒤져 발굴했다는 제작진의 노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의 능청스런 연기는 첫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집으로' 이후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어딘가 전화를 한다.

그들의 휴대전화에는 아마도 부모님의 전화번호가 찍혀있지는 않을까.

◇스파이더맨2

2년 만에 나타난 거미 인간은 전편의 영웅적인 모습보다 영웅과 인간의 두 가지 역할 속에서 갈등하는 피터(토비 맥과이어)의 고민이 담겨진 느낌이다.

당초 속편의 제목으로 '스파이더맨2-더 이상 아니다'와 '스파이더맨2-마스크를 벗다'를 고려했다는 샘 레이미 감독의 말은 어느 정도 영화에 표시돼 나타난다.

시도 때도 없이 빨간 줄무늬 마스크를 써야 하는 피터는 지구를 구하는 일 때문에 항상 피곤하다.

그래서 수업도 매일 빠져야 하고 급기야 여자 친구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과의 데이트에도 문제가 많다.

결국 그는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기로 결심하는데….

드라마적인 요소가 중심이 됐다는 소식에 다소 실망할 액션영화팬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2억1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제작비가 어디에 쓰여졌겠는가.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며 뉴욕 고층빌딩을 널뛰기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과 척추에 연결된 4개의 촉수를 허공에 휘두르는 새로운 악당 '닥터 오크'는 전편보다 더욱 강력해진 액션과 스케일을 선사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스파이더맨이 아슬아슬하게 비켜 가는 신이나 뉴욕 지하철을 무대로 현란한 곡예 묘기를 보여 주는 신은 한층 눈썰미가 높아진 국내팬들을 위한 서비스.

오는 30일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을 찾는 등 한국팬들을 위한 제작진의 배려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속편이 계속 이어질 경우 스파이더맨이 활약할 주무대가 뉴욕에서 한국으로 옮겨짐은 어떨까.

사족 하나. 전편에 이어 속편의 의상 디자인을 담당한 짐 애치슨은 스파이더맨의 캐릭터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의상 제작에 고심했다.

그 결과 촬영장소마다 달라지는 빛 강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존의 색감을 유지하는 특수한 스파이더맨 유니폼을 제작했다는데. 앞으론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스타일맨이라고 불러야겠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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